정년 제도는 비스마르크의 간계…한국선 50대에 주는 정치적 뇌물
빈익빈의 양극화, 더 심화될 듯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독일이 징병제를 처음 실시한 것은 1870년 보불전쟁 때였다. 시골 청년들이 군인으로 불려나갔다. 외교 문서까지 조작한 비스마르크의 계략에 걸려들어 다혈질인 프랑스가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곧바로 독일군이 물밀듯이 파리성문으로 쇄도했고…. 유명한 파리의 방사형 대로를 정비한 것은 나폴레옹 3세였다.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이기도 한, 골목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해방구를 선포하는 데모대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신속한 투입이 필요했기에 사통팔달로 간선도로를 뚫었다. 그러나 보불전쟁 패배로 그의 치세는 끝났고 말았다. 알퐁소 도데는 독일에 내주었던 알자스로렌을 기억하자며 ‘마지막 수업’을 썼고 에르네스트 르낭은 독일 민족주의 폭주를 걱정하며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저 유명한 연설을 했다. 모두가 1차 세계대전의 전주곡이었던 보불전쟁의 결과였다.
시골뜨기 징집병인 독일 병정들은 베르사유와 샹젤리제를 마음껏 휘젓고 돌아왔다. 캉캉춤을 추어대던 환락가 피갈의 무희들도 뇌리에 남았다. 그래서일까. 아무도 다시는 시골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유를 만끽하고, 정치에 눈을 뜨고…, 르낭이 우려한 바로 그 ‘국민(민족)’이 되어 독일로 돌아왔다. 떠날 때는 시골 촌놈이었지만 프랑스 급진 민주주의에 잔뜩 오염된 채 돌아왔다. 이제 거꾸로 독일이 혁명 전야를 맞게 되었다. 혁명은 필시 역수출되는 법이다. 도시는 파리가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소요를 키워내는 배양기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직장과 직업이 필요했다. 대기업들이 불황으로 밀려들던 시기였다. 늙은 노동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그 자리에 청년 실업자를 취직시킨다는 것이 비스마르크의 묘책이었다.
그렇게 ‘정년’제도는 태어났다. 처음부터 정치적 세대 충돌이었고 타협책이었다. 물론 은퇴자를 그냥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65세 국민연금이 만들어졌다. 연금과 정년, 청년실업과 정치타협의 운명적 연결 고리가 만들어졌다. 비스마르크는 연금에 대해서는 특별히 ‘정치적 뇌물’이라고 썼다. 65세는 나중에 전 유럽의 은퇴 기준이 되었다. 유럽은 지금도 ‘65세 정년-65세 연금’체제(프랑스 정년은 60세)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정년 제도가 아예 없는 나라도 있다. 자유가 넘치는 나라에서는 정년이 아예 없다. 당연히 실업률도 낮다. 미국이 그런 경우다. 체면과 위선을 버리면 기실 은퇴란 없다. 고용이 유연한 미국에서 오히려 장기근속이 많은 것도 자연스럽다. 누구나 임금을 협상해가면서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하는 것이다.
정년과 실제 은퇴 연령은 당연히 다르다. 스웨덴은 63.7세에 은퇴다. 스페인 그리스는 62세 언저리다. 천국일까? 아니다. 정년이 높으면 청년실업률도 높다. 스페인과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거의 50%다. 스웨덴 등도 20%에 육박한다. 규제와 간섭이 많을수록 실업률이 높아진다. 아들과 아버지가 일자리를 다투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국의 노동연구가들은 보고서를 썼다. 그런 분석에 기대어 국회는 쉽게 정년을 연장했다. 그러나 아무도 생산성 급여나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실로 지식분자들의 기만적 침묵이다.
정년 연장을 축하해야 할까. 아마도 강력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에서는 그럴 것이다. 연장된 3년만큼은 천국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나머지는 지옥에 더 다가갔다. 그들은 울어야 할 것이다. 세금 내는 국민도 그렇다. 지금도 충분히 강력한 노동귀족들을 국민들은 더 길게 먹여 살려야 한다. 청년들도 울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소위 진보정책의 위선을 갈수록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총노동비용이 줄지 않는 한 청년일자리는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결국 양지와 음지는 더 선명해질 것이다. 생산성에 기반한 유연한 임금제도 없이 실시되는 정년 연장은 음지에는 재앙이다.
국회의원들의 계산은 간단했다. 대학생들에겐 반값 등록금 해줬으니 이번에는 베이비부머의 비위를 맞춰줄 때라는 것이다. 최근 치러진 두 번의 선거에서 50대 베이비부머의 위력을 보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들에게 일단 뇌물을 먹이고 보자는 것이 정년을 너무도 간단하게 연장해버린 정치인들의 논리다. 비스마르크 이후 정치는 언제나 그렇게 비열하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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