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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루비니의 경제 정상화 역설…"지금 주식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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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으로 '美증시 낙관론' 펼쳐
이율배반 성격…2년 뒤가 문제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닥터 둠(Doctor Doom)’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분류된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획’을 긋는 중요한 예측에는 빠짐없이 비관론, 그것도 투자자에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극단적인 비관론을 주장했다.

6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가 발생하던 당시 미국 경제는 10년 동안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장기 불황론’을 펼쳤다. 2년 전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진 직후 미국 경기가 다시 둔화 조짐을 보이자 ‘더블 딥(이중 침체)’보다 더 어려운 ‘트리플 딥(삼중 침체)’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면서 어둡게 봤다.

작년에는 재정위기에 시달렸던 유럽과 관련한 비관론을 많이 내놓았다.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그렉시트’, ‘유로 가치가 출범 초 등가 수준(1유로=1달러)까지 폭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표적이다. 다행히 미국 및 유럽과 관련한 이런 비관론은 들어맞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월가에서는 이솝 우화의 ‘늑대와 소년’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루비니 교수의 비관론은 올해도 계속됐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중국 경제가 올해는 ‘퍼펙트 스톰(총체적 난국)’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최근 세계 경제의 최대 현안인 ‘아베노믹스’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극히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올해 예측이 맞을지는 하반기 들어서면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 성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과 다른 하나는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루비니 교수처럼 앞날을 어둡게 본다면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와 달러화, 금, 스위스 프랑화 등과 같은 안전자산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다.

하지만 비관론 일색이었던 루비니 교수가 투자자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예상을 내놓았다. 이달 초 열린 밀켄 콘퍼런스(일명 미국판 다보스포럼)에서 “앞으로 2년 동안 주식이 가장 유망하다”며 “지금 주식을 가능한 한 많이 사둘 것”을 권했다. 그 뒤 헤지펀드 거물인 데이비드 테퍼 등의 증시 낙관론이 줄을 잇고 있다.

‘루비니 패러독스’라고 불릴 만큼 워낙 예기치 못한 예상이어서 그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루비니 교수가 증시 낙관론을 펼치는 데는 ‘경제 정상화 역설’을 들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바라는 ‘임원’이 되는 것보다 오히려 만년 과장이 더 좋다는 것에 비유되는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미국 경제는 2차 오일 쇼크 직후인 1980년대 초반에 실물경기 침체 아래 물가가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정책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이 상황에서는 침체한 실물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양책을 쓰면 물가가 더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을 단행하면 실물경기는 더 침체에 빠져든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 해결책으로 나온 이론이 ‘공급 중시 경제학’이었다. 이전까지 총수요 조절을 통해 경기문제를 해결하는 케인스 처방에서 벗어나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총공급 능력을 늘려 침체한 경기도 살리고 물가도 안정시켰다.

‘경제 정상화 역설’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재 물가는 ‘월마트 효과’와 셰일가스 개발 등으로 안정돼 있지만, 주가 등 자산가격은 많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경기는 기대만큼 회복하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거품이 우려되는 자산가격을 잡기 위해 긴축을 단행하면 경기가 침체에 빠지고, 경기를 추가로 부양하면 자산가격이 더 올라 거품 우려가 현실화된다. 새로운 형태의 ‘뉴 노멀 스태그플레이션’이자 해로드-도마의 ‘이율배반이론’이다.

S&P500지수가 1600선을 돌파하면서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등이 주가가 펀더멘털 이상으로 오르더라도 ‘부의 효과’에 의해 시차를 두고 실물경기나 기업실적이 개선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버냉키 Fed 의장도 주식 등 위험자산의 과열 현상을 경고하며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금의 정책기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루비니 교수가 증시 낙관론을 펼치는 배경이다. 오히려 경제가 정상화되면 출구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거품이 붕괴돼 투자자는 커다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직장인이 요즘처럼 생애가 길어진 시대에는 만년 과장에 머무르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루비니 교수가 주장하는 증시 낙관론은 미국 경제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추가 부양책과 출구전략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설령 미국 경제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질적으로는 더 악화돼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낙관론으로 급선회한 것이 아니라 결국 비관론인 셈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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