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철은 일명 ‘나경(羅經)’이라 해 자연의 신비한 순환 원리를 층층이 담고 있다. 단순히 동서남북의 방위만 나타내는 나침반과는 다른 물건이다.
2000년 전 중국에서부터 사용되면서 풍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지만, 요즘 풍수가 형기론과 물형론에 치우치면서 무용지물처럼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큼 풍수를 아는 사람들은 반드시 패철을 소지한다. 패철이 없을 경우 몹시 어설픈 풍수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생기가 모인 곳에 이르면 손에 기(氣)가 전달됩니다.” 어느 역술인이 명당을 찾는 비법이다. 심지어 어떤 풍수가는 멀리서 명당의 훈훈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만을 보고 혈을 잡는다고까지 한다.
“그럼 패철은 왜 가지고 다니죠?” “그래야만 아는 것처럼 보여 지관 노릇이라도 하지요.” 이처럼 패철을 그저 폼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풍수가도 일부 있다.
패철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원형에 12방위만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해 현재는 층층이 자연의 섭리를 36층까지 그려넣었다.
한나라의 장량은 12방위의 패철을 24방위로 세분화하고, 당나라의 양균송은 24방위를 오늘날의 패철로 완성했다. 하늘의 북쪽인 북극성과 자석의 북쪽인 자침과의 차이를 계산해 패철에 포함시켜 보다 정확하고 편리해졌다.
소위 시골 지관 중에는 시신(관)의 위치를 놓는 데만 패철을 사용하고 각 층에 나타난 자연의 이치나 용법을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패철은 풍수 중 이기론에만 소용되는 물건이고, 한국 풍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형기론자들은 패철을 사용하지 않은 채 혈을 잡기 때문이다. 한 풍수가의 주장을 들어보자.
“패철에 대한 복잡한 이론은 이기론에 속하는 부분이다. 패철은 방향을 아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기론은 음양오행의 이치로 땅의 이치를 알아내는 방법인데 이론과 실제가 항상 일치하지 않듯이 생기가 모인 혈을 감지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기론에 집착하면 풍수의 본질과 거리가 멀어진다.”
패철이 땅의 오묘한 이치를 밝히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한국 풍수의 주류가 이와 비슷하며 심지어 어떤 풍수가는 패철을 아예 소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패철의 용법을 모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세상에는 패철의 용법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풍수에 대해 무엇하나 배우지도 않았으면서 어떤 사람은 도에 통했다고 말을 하고 다닌다. 물론 도통했다면 좋겠지만 풍수가가 패철의 용법도 잘 모르면서 어찌 풍수와 음양을 알고 도를 통했다고 할 수 있는가.” 풍수에 사용되는 물건은 그 하나 쓰임이 없는 것이 없다. 패철도 풍수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구한 세월 그 효용성이 확인된 물건이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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