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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변화하는 유기체"…대처 자유주의 개혁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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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와 함께하는 경제사상사 여행 (33) '진화론적 자유주의의 선구자' 허버트 스펜서

다윈 '진화론' 사회에 적용…시장은 스스로 진화…정부의 계획적 개입은 불가능
인간에게도 적자생존 적용…우생학 지지했단 오해 받아




19세기 후반 이래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구사회의 좌파지식인들은 사유재산이 없는 사회주의가 인류를 구원한다는 달콤한 말로 시민들과 정치권을 유혹했다. 좌파 세력은 커져갔고 자유주의는 서서히 기울어 갔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 자본주의는 사회 진화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주장하며 자유주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인물이 있었다. 영국의 사회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다. 그는 자유 자본주의 이념에서 벗어나는 건 자연법칙과 진화법칙에 대한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했다는 의미에서 ‘사회다윈이즘’이라고 불리는 스펜서의 핵심 사상은 사회도 유기체처럼 생존경쟁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건 도태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진화과정을 통한 여러 발전단계를 거쳐 결국엔 고도로 발전된 이상적 사회가 필연적으로 등장하는데, 그 이상적 사회는 ‘자유의 원칙’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자유시장이라는 게 스펜서의 설명이다.

스펜서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라는 봤다. 이를 추구하려면 자기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조건이 자유라는 설명이다. 자유원칙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직 집필에만 전념했던 스펜서가 자유주의 사회의 도래를 낙관한 이유도 흥미롭다. 자연도태와 적자생존 원리를 도입한 게 그렇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를 도태시킬 압력이 강력하게 작용해 자유사회가 등장하는 건 필연적이라고 한다.

그런 진화사상에서 도출된 스펜서의 결론도 주목을 끈다. 언어와 똑같이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사회도 지배자나 입법자가 계획해서 만든 게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시민들의 개별적인 노력을 통해 저절로 생성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장사회는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하면서 진화하는 유기체이기에 정부가 계획을 갖고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스펜스는 주장한다. 정부는 오로지 자유와 재산의 보호 역할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스펜서는 정부가 그같은 제한적인 역할을 넘어 경제거래, 위생 감독, 우편 등 민간 부문에 개입하는 것은 관료의 비대화뿐만 아니라 강제협력과 폭력적 갈등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간섭은 역사의 후퇴요, 진화법칙의 위반이자 노예의 길이라고 경고했다.

스펜서는 대기업의 등장, 경제력 집중, 분배의 불평등도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현상은 악덕 자본가 논리가 아니라 생존경쟁과 자연도태의 필연적 결과이며 사회 발전의 힘이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사회정의에 대한 스펜스의 생각이다. 적자생존은 성공한 사람이 많은 이익을 획득하고 실패한 사람은 적게 갖거나 도태돼야 한다는 능력주의를 의미한다. 그가 정부의 소득 재분배를 반대하는 이유도 자유의 침해뿐만 아니라 능력주의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스펜서는 도태될 사람을 정부가 살리는 일이라는 이유로 19세기 후반 점증해가는 정부의 복지 개입도 반대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시민들의 과제라고 주장하면서 그들의 자발적 이타심에 호소한다.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는 일반 시민에겐 두렵고 위협적이고 살벌한 풍경을 연상시키는 개념들이다. 스펜서가 그같은 개념을 기초로 하는 진화사상을 만들어내 자유주의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이유는 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절약 근면 자기책임 독립심 등 청교도적 윤리가 퇴색되고 국민이 국가에 의지하려는 분위기가 커져가고 있었다. 진화원리가 종교윤리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펜서의 진화사상에 대한 비판도 있다. 능력주의는 능력, 도덕적 품성 등 인간을 우열로 구분하고 이에 따라 사회적 서열을 정한다. 그러나 우열을 구분할 기준이 없다는 이유에서 고전적 자유주의는 그런 능력주의를 반대한다. 자유시장의 소득도 능력과 같은 투입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런 투입의 결과가 소비자들에게 주는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펜서가 사회를 유기체로 파악하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사회유기체론은 개인이 최고라는 자유사회의 특징인 개인주의와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하이에크는 유기체와는 달리 자유시장을 ‘자생적 질서’라고 말한다.


스펜서는 진화를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예정된 단계로 이해하는 마르크스의 역사주의에 빠지고 말았다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진화란 스스로의 변화과정이고 진화이론의 과제는 그런 과정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다.

스펜서는 자본주의를 단지 승자와 패자, 적자(適者)와 부적자만이 있는 게임의 장으로 시장을 비협력적인 성격으로 묘사했다. 자유사회가 상호이익이 창출되는 교환의 장, 협력의 장이고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시장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스펜서 사상의 힘- 반독점법 입법 저지에 기여…美 기업가들로부터 지지 받아

스펜서는 자유계약을 지지하고 기업과 통상에 대한 규제를 반대하는 작은 정부 이론의 신봉자였다. 몰락해가는 자유주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개발한 적자생존 개념과 다윈의 ‘자연도태’를 결합한 스펜서의 진화사상은 영국인에게 자유주의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제공했다.

스펜서의 사상은 영국보다는 미국으로부터 더 큰 지지를 받았다. 19세기 말 미국 사회는 대기업들의 반경쟁적 시장지배로 경제에 막중한 피해를 야기한다는 인식에서 통상규제와 반독점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기업의 성장은 생존에 적응한 결과요 자연법칙의 산물이라고, 대기업이야말로 대중에게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주는 장본인이라고 주장하는 스펜서는 미국 국민으로부터 악덕기업이라고 지탄받던 기업가들엔 구세주처럼 보였을 터이다. 미국의 당시 유명한 경제학자 섬너는 스펜서의 사회다윈이즘을 미국 사회에 확산시키면서 록펠러, 카네기, 제이 피 모건 등 백만장자야말로 자연이 선택한 결과라고 주장하며 기업가들을 변호했다.

스펜서와 그 후계자들이 개척한 진화사상은 1890~1914년에 전성기를 이뤄 반독점법과 기업규제를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점차 인기가 떨어져 1920년대 이후에는 자취를 감췄다. 사회다윈이즘은 인종의 우열을 따지고 인종주의와 남성우월주의를 지지하는 우생학이라는 좌파 지식인들의 주장이 시민에게 먹혔기 때문이었다.

대학 경제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주류경제학은 뉴턴의 기계론적 자연관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화사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비주류였던 슘페터는 생물학 용어라는 이유로 진화라는 말 자체를 싫어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에는 스펜서의 진화론은 다윈과 함께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주류경제학의 기계적 균형론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한편에서는 하이에크처럼 자유주의 경제학의 확립을 위해서였다.

주목할 점은 진화사상의 원조는 하이에크가 입증하듯이 법, 언어, 도덕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 등이 개발한 진화사상이라는 점이다. 이를 생물학에 적용한 인물이 다윈이고 또 다윈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 스펜서다.

스펜서의 사상은 1980년대 대처 영국 총리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자유주의 개혁의 철학적 토대였다.

대처는 재임기간에 자유주의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는 스펜서의 말을 영문 약자(TINA)로 줄려 ‘티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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