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지도자·나약한 리더…엇갈린 평가
장 전 총리의 삶이 녹아 있는 명륜동 가옥 일반인에 개관
서울 혜화역 4번출구를 나오면 혜화동 로터리와 만난다. 혜화초등학교쪽 좁은 도로를 따라 10분 쯤 걷다 보면 왼편에 '장면 가옥'이 나타난다. 길가에 안내판이 서 있다. 일반 가정집 담장과 구분이 되지 않아 자칫하면 놓치기 쉽다.
지난 19일 찾은 장면 가옥에선 아직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키 작은 나무들이 담장 밑에서 파릇하게 이파리를 내밀고 줄지어 서 있었다. 옅은 하늘색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방향을 틀어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계단을 올라서면 장면 전 총리의 흉상이 방문객을 반긴다.
집안은 고요하고 아늑했다. 흉상을 지나 발걸음을 옮기면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아담한 마당과 별채가 보인다. 마당 한켠 우물과 안채의 닳아 있는 섬돌에서 사람 손때가 느껴졌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 경호원실, 수행원실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공간이 장 전 총리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실이다.
이 집을 지을 당시 장 전 총리는 동성상업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광복도 이 집에서 맞았다. 그는 1947년 초대 주미대사가 되어 미국으로 출국했다. 1951년에는 제2공화국 국무총리를 맡았다. 이후 민주당을 조직해 1956년에 부통령이 되었다.
장 전 총리는 초대 주미대사로서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한국파병에 큰 역할을 했다. 최초로 의원내각제를 실시하였으며, 4?19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민주적인 선거절차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뤘냈다.
장 전 총리가 무능력하고 나약한 리더였다는 일부 평가도 있다. 제2공화국 당시 장 전 총리의 결단과 포용력이 결여된 리더십으로 인해 민주당 구파들은 따로 떨어져 나와 신민당(新民黨) 창당했다. 장 전 총리는 제2공화국 기간 내내 의회에서 안정적인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장 전 총리는 정부가 효율적으로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지 못했고, 정국은 불안정해졌다. 이는 제2공화국의 민주체제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5?16 군사정변에 대한 대응방식에서도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장 전 총리는 재임기간 동안 10여 차례나 구체적이고 근거 있는 쿠데타 정보를 보고받았다. 그는 매번 “미군이 있는데 어떻게 쿠데타를 하겠소”라는 말만 반복했다.
1960년 12월 김도연으로부터 정변 음모를 전달받은 윤보선은 장면에게 정변 준비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장 전 총리는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에게 알아보니 별일이 아니다. 걱정할 것 없다”라고만 했을 뿐이다.
5월16일 정변 소식을 듣고 장 전 총리는 주한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하려 했다. 미국대사관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가족들을 피신시킨 뒤 장 전 총리는 수녀원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5월18일에야 수녀원을 나와 3일 뒤인 21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각사퇴를 발표했다.
이후에 장 전 총리는 군사정권에 의해 연금생활을 강요당했다. ‘이주당(二主黨)사건’으로 불린 반혁명 음모사건에 연루돼 공산주의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가 형집행 면제로 풀려났다. 석방된 뒤 5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다 1966년 6월4일 지병인 간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 전 총리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 명륜동 가옥에서 살았다. 장면 가옥은 장 전 총리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지난 19일 장면 가옥이 4?19혁명 53주년을 맞아 개관했다. 개관식은 19일 오후 2시에 열렸다. 장면 가옥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가득찼다.
이날 개관식에는 장 전 총리의 유족들과 박원순 서울시장, 민주통합당 정세균 의원 등이 참석했다.
장 전 총리의 삼남인 장익 주교(81)는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나는 여기서 4살 때부터 살았어요. (이 가옥이) 지난날의 기억이라기보다 무슨 뜻이 여기 담겨 있었는지, 그것이 오늘의 우리 또 내일의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축사를 전했다. 박 시장은 “(장 전 총리는) 외교의 초석을 쌓으셨고, 비록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하셨다 생각한다” 며 “(가옥이) 복원됨으로써 이곳을 관람하는 시민들과 청소년들이 역사를 더 잘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한경닷컴 권효준 인턴기자 winterrose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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