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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무진기행'과 순천만 정원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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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맛이 당길 때면 인사동으로 가곤 했다. 화랑골목 지하의 허름한 술집. 탱탱한 참꼬막 안주에 막걸리 몇 사발을 걸치면 온 세상이 불콰해 보였다. 참꼬막이 없을 땐 새꼬막이나 서대찜도 좋았다. 주로 문인들과 영화인들이 많았지만, 키 낮은 2층 탁자엔 젊은 연인들도 섞여 있었다.

술집 이름은 여자만(汝自灣). 여자도를 품고 있는 여수 앞바다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영화로는 쪽박차고 식당으로 대박난 이미례 감독’이 주인인데, 손님이 많아서 몇 년 전엔 인근에 큰집을 또 열었다.

여자만은 순천만의 옛이름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순천만을 끼고 있는 내해의 다른 이름이다. 순천만은 겨울에서 초봄 사이의 참꼬막과 여름철의 짱뚱어 맛으로 소문난 곳이다. 이른 아침의 안개와 석양 무렵의 갈대밭도 장관을 이룬다. 특히나 문학청년들에겐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의 답사 코스로 유명한 감성 순례지다.

무진은 지도에 없는 상상의 공간이지만 작가는 ‘순천만의 대대포 앞바다와 그 갯벌이 무대’라고 훗날 얘기했다. 그가 이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니 더욱 그럴 법하다. 서울에서 머리를 식히러 내려온 주인공이 음악교사 하인숙과 함께 ‘바다로 뻗은 긴 방죽길’을 지나 둘만의 밀실로 가는 장면도 현실 속 그대로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10㎞라는 이정비를 보았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 그는 ‘무진(霧津)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썼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고 없다.’

스물세 살 젊은작가가 이 오리무중의 안개나루에서 찾아 헤맨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아갈 고향은 어디에도 없다는 슬픔과 그 때문에 더 부끄러운 뒷모습만 남기고 결국 그는 세속도시로 회귀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무진은 무언가 실패한 뒤 찾아가는 모항이자 새롭게 시작할 때 찾는 출항지다.

무진의 안개는 여전히 몽환적이고 바람결에 사운대는 갈대순은 푸르다. “내 생애 중 가장 슬플 때 썼다”던 그의 회고를 딛고 이제는 슬픔의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 이곳에서 국제적인 정원박람회가 열려 인산인해를 이룬다니 감회가 새롭다.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라 6개월이나 계속된다고 한다. 화사한 꽃향기가 대대포 갯벌과 여자도의 허리를 은밀하게 휘감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도에 없는 안개나루의 봄날, 꼬막처럼 쫄깃한 인생의 맛….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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