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회장과 우승 전날 통화…"굿 럭" 만 20번 氣 넣어주셨죠
161㎝ 단신에도 260야드 보내…"끊어가는 것 몰라, 질러야죠"
‘따르릉….’
국내 여자프로골프(KLPGA) 올해 개막전인 롯데마트여자오픈 3라운드를 마친 날 저녁 김세영(20)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뜻밖에도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었다. 4년간 묵묵하게 후원하면서 단 한 번도 전화를 걸어본 적이 없던 박 회장이었다. 그는 “내일 잘해라. 행운을 빈다. 굿 럭!(Good luck)” 하며 격려해줬다. 김세영은 “짧은 통화였지만 ‘굿 럭’만 스무 번 이상 들었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당시 선두에 5타 뒤진 공동 5위였다. 그는 1년간 2부 투어와 3년간 1부 투어 생활을 하면서 우승 한 번 못하고 최고 성적이 공동 6위였다. 그런 김세영이 우승하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종라운드 17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1타 차 2위에 올랐을 때도 김세영은 주목받지 못했다.
정말 마지막 한 방이었다. 18번홀(파5) 페어웨이에서 219m를 남긴 김세영은 3번 우드로 사력을 다해 ‘2온’을 노렸다. 그는 운동 선수로서는 161㎝의 단신에 속하지만 평균 260야드를 치는 장타자다. “전 일단 거리가 되면 끊어 가는 것을 몰라요. 무조건 질러야죠”라고 말할 정도로 대담하다.
3m 이글 퍼팅으로 우승을 거머쥔 김세영의 역전 드라마는 명승부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세영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회장님이 행운의 기를 넣어주셔서 우승했어요”라고 알렸다.
김세영은 아마추어 시절 잘나갔다. 지난해 KLPGA 대상을 받은 양제윤(LIG) 장하나(KT) 등과 중·고교 시절 국가대표 생활을 함께하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아마추어 경력을 인정받아 톱프로인 신지애와 같은 후원사에서 ‘한솥밥’을 먹는 복까지 받았다. 그러나 프로가 된 뒤 그는 우승 문턱조차 가보지 못한 채 승승장구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는 마음 고생을 겪어야 했다.
김세영의 우승 비결에는 대회 직전 바꾼 두 가지가 있다. “그동안 ‘스트롱 그립(손등이 많이 보이도록 왼손을 돌려 잡음)’을 해왔는데 악성 훅이 자주 나 티샷을 할 때면 볼이 왼쪽으로 갈까봐 두려웠어요. 과감하게 ‘스퀘어 그립(양손을 마주보게 하면서 잡음)’으로 바꾸면서 볼이 똑바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샷에 자신감이 생겼죠.”
또 하나는 개막 전날 바꾼 퍼터 덕이었다. “원래 헤드 뒤가 둥글게 생긴 ‘말렛형 퍼터’를 써왔는데 ‘스탠더드형 블레이드 퍼터’로 바꿨습니다. 원래 제 퍼팅 스트로크는 안으로 뺐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인-투-인’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이를 ‘일자(一字)’로 바르게 만들기 위해 헤드가 무거운 말렛형을 써왔죠. 대회를 앞두고 퍼팅 연습을 하는데 제 퍼팅 스트로크가 인-투-인에서 일자로 바뀌었더라고요. 그래서 일자 스트로크에 맞는 블레이드형 퍼터로 교체했는데 홀에 쏙쏙 잘 들어갔습니다. 자신감이 붙으면서 마지막날 17번홀 6m 버디, 18번홀 3m 이글 퍼팅을 성공시킬 수 있었죠.”
경기 광명시 하안동과 서울 독산동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10년간 태권도를 익혀 3단 자격증을 갖고 있는 ‘태권 소녀’ 김세영은 태권도가 장타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태권도에서 공격할 때 딱 끊어 치잖아요. 이것이 골프의 임팩트와 비슷해요. 기초 체력에도 도움이 됐고 순발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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