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규모 상생펀드 조성
삼성SDI 40개 그린파트너…탄소배출 감축 노하우 전수
TV프레임 등을 만드는 신흥정밀은 삼성전자의 협력사다. 1968년 신흥공업사로 개업한 직후부터 삼성전자와 거래하며 지난해 매출 1조7500억원, 국내외 16개 법인을 가진 중견기업으로 발전했다. 그렇지만 경영시스템은 중소기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사적자원관리(ERP)를 도입했지만 구매 영업 경리 개발 등 부서별로 각각 달라 시너지가 나지 못했다.
2011년 신흥정밀은 삼성전자가 선정한 ‘글로벌 강소기업’에 뽑혔다. 협력사를 세계 수준의 강소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된 뒤 삼성전자, 삼성SDS에서 컨설턴트가 파견돼 ERP 운용 노하우를 전수했다. 2011년 10월부터 작년 8월까지 기존 ERP를 버리고 통합 ERP를 도입했다.
이종찬 신흥정밀 부사장은 “그동안 삼성전자는 4~12주 전에 발주 예상치를 보내주고, 이후 사전주문과 본주문을 냈는데, 우리 쪽에서 이를 처리할 시스템이 없어 사전주문 변경으로 인한 손실만 한 해 500억원 이상에 달했다”며 “ERP를 바꾼 뒤 사전주문 취소·변경에 대해 모든 부서가 즉각 대응할 수 있게 돼 손실을 90% 이상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 부사장은 “회사 규모는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경영 프로세스에서 수없이 많은 한계를 느끼던 신흥정밀이 강소기업 활동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운다
삼성전자는 1000여개 협력업체 중 2011년 8월 39곳을 후보로 정한 뒤 자금과 인력, 제조기술 등 경영시스템 전반을 지원해왔으며 지난 3월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 제조 역량 등을 3단계로 평가해 14개사를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선정하고 육성 중이다. 이들을 2015년까지 국내시장 점유율 2위 이내,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이내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 새 협력사와 상생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듣는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이 최근 열린 삼성전자 동반성장데이 행사에 참석, “삼성전자는 ‘해외 유명 경쟁사’와 달리 이면계약,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협력사를 괴롭히지 않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소비자를 우선으로 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얘기할 정도다.
최병석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장(부사장)은 “정부 눈치를 봐서 중소기업을 돕겠다는 게 아니다. 협력사가 강소기업이 돼 좋은 제품을 만들면 삼성 제품이 경쟁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지원하는 것이다. 그게 삼성전자 동반성장의 업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기술만 있으면 ‘조건 없이’ 지원
지난해 도입한 ‘신기술개방공모제’의 경우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내놓고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제도다. 삼성과 기존에 거래가 없어도 기술이 있으면 지원해준다. 실패해도 상관 없다. 좋은 부품이 개발되면 거래를 시작하는 식이다.
협력사의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은행, 산업은행, 우리은행과 함께 1조원 규모 상생펀드도 만들었다. 삼성전자가 4000억원을 냈다. 협력사는 누구나 시중금리보다 1.4~1.6%포인트 낮은 금리에 돈을 쓸 수 있다. 지금까지 660개 업체가 누계 1조3000억원의 대출을 받아 썼다.
○협력사, 채용까지 책임진다
또 어려운 인력 사정을 감안해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작년부터 시작했고, 협력사가 채용한 660명의 신입사원에게는 삼성그룹 신입사원에 준하는 신입사원 교육(3박4일)도 시켜줬다.
삼성SDI의 동반성장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각 부서 전문가가 협력사에 가서 지도하거나 협력사 직원 교육과정을 운영해 노하우를 전수한다. 대표적인 게 그린파트너십이다. 삼성SDI는 그동안 40여개 협력사를 그린파트너로 선정해 △온실가스·에너지 전문가 양성 △에너지 효율 진단과 개선책 마련 △온실가스 배출 관리 툴 개발 등을 지원했다. 동진쎄미켐이 대표적이다. 삼성SDI는 동진쎄미켐이 어디서, 얼마나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 있는지 진단하고 개선 방법을 찾았다. 이 진단을 토대로 동진쎄미켐은 보일러 조정, 응축수 회수시스템 등을 개선했다. 이를 통해 매년 1억6400만원의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삼성SDI는 또 거래대금 결제조건 개선, 상생펀드 304억원 출연, 하도급 가이드라인 도입 등 동반성장 체질 개선을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박상진 삼성SDI 사장은 “동반성장이 기업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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