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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03>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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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이 산에 올라 양 떼에 풀을 먹이고 있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떼를 보던 소년은 무료함에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때 소년의 눈에 산 아래 마을에서 농사일에 열심인 사람들이 들어왔다. ‘심심한데 장난이나 쳐 볼까?’ 소년은 ‘도와주세요! 늑대가 나타나 양들을 잡아먹으려고 해요!’라고 소리쳤다. 소년의 고함을 들은 사람들은 농사일을 멈추고 산으로 뛰어올랐다. ‘이놈들. 잡히기만 해봐라.’ 사람들은 소년이 있는 곳에 이르러 늑대를 찾았지만 양 떼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깔깔대며 신나게 웃었다. ‘거짓말이에요. 심심해서 장난친 거예요.’ 사람들은 소년의 장난이 지나치다 생각했지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타이르며 발길을 돌렸다. 며칠 후 다시 산에 오른 소년은 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도와주세요!’ 소년의 말에 사람들은 또다시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 ‘이놈! 또 장난쳤구나. 또 거짓말을 하면 그땐 무사하지 못할 거다.’ 사람들은 화가 나서 소년을 꾸짖었지만 그는 끽끽 대며 웃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여느 때와 같이 양 떼에 풀을 먹이고 있을 때 그의 눈앞에 늑대가 진짜로 나타났다. 소년은 다급히 ‘큰일 났어요! 늑대가 진짜 나타났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 하지만 소년을 도우러 산을 오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소년이 또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양들은 늑대에게 모두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솝우화의 교훈

이상은 ‘양치기 소년과 늑대’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솝우화의 내용이다. 우화는 인간뿐 아니라 의인화한 동식물과 무생물 등을 주인공으로 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문학 장르다. 우화 속에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져야 할 도덕적인 가르침이나 인생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교훈이 담겨 있다. 즉, 사람들은 우화를 통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윤리의식을 배양하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양치기 소년과 늑대’도 독자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거짓말이 만연하면 신뢰가 떨어져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것은 물론 사회시스템도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국 정부가 통화정책 수행 과정에서 양치기 소년과 같이 거짓말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통화정책이란 경제 성장, 물가와 고용 안정, 국제수지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 내의 화폐(통화)량이나 그 가격(이자율)을 관리하는 정책을 말한다. 통화정책을 펴는 이유는 통화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변화하면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기침체 상황에서 통화량을 늘리면 경기를 진작할 수 있고, 반대로 경기가 과열 상태에 있을 때 통화량을 줄이면 경제를 안정 국면으로 진입시킬 수 있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으로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바로 이 부분에서 A국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결국 A국 정부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도 말이다. 이제 A국 정부는 각종 통계 수치와 대외적인 여건을 근거로 경제가 불황에 빠져 있다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불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경제 내의 통화량을 늘려 이자율을 내릴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이자율이 하락할 경우 경제에는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통화량이 증가해 이자율이 하락하면 사람들은 전보다 더 싼 이자를 내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부추기고 이에 따라 총수요가 증가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연구개발을 추진하거나 상품 제작에 필요한 대규모의 장치를 구입할 때는 막대한 자금이 요구된다. 기업은 이러한 자금의 수요를 회사채 발행이나 대출을 통해 충당한다. 만약 이자율이 낮으면 회사채에 대해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줄고 대출 이자의 부담도 감소하여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이를 통해 총수요가 증가한다. 한편 이자율이 낮으면 국제수지가 개선되는 효과도 있다. 다른 나라의 이자율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A국의 이자율이 하락했다고 하자. 이는 A국 은행에 돈을 예금할 때 얻는 수익이 감소함을 의미하므로, 투자자들은 다른 나라에 투자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A국의 화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해 A국 화폐의 가치가 하락한다. 이는 A국의 수출품의 가격은 하락시키고 A국으로 유입되는 수입품의 가격은 상승시켜 A국의 순수출(=수출-수입)을 개선시킨다.

통화량 증가의 부작용

이처럼 경기가 불황일 때 통화량을 늘리면 소비, 투자, 수출이 증가해 소득이 오르고 실업률이 감소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경제에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장기에 걸쳐 지속될 경우다. 소비, 투자, 수출이 증가하면 총수요가 증가하는데, 총수요의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인플레이션은 같은 양의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필요한 화폐의 양이 많아지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해 화폐 수요가 증가하면 이자율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소비와 투자가 감소해 총수요는 하락세로 전환된다. 심한 경우 총수요는 통화량을 늘리기 전의 수준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 즉, 장기에서 통화량의 증가는 인플레이션만 촉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이처럼 대비되는 효과가 공교롭게도 선거를 전후해 나타난다면 정부는 선거에서 웃고 국민들은 선거가 끝난 후 인플레이션에 우는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물론 현실의 정부가 이처럼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은 많은 정보가 대중에 공개돼 있고, 또한 경제를 왜곡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맞게 될 후폭풍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한 그것이 현실화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정권을 잡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의 속성을 감안하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제거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권력을 가진 정부가 아닌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화폐 발행에 대한 독점권도 중앙은행에 위임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 총재를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제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법에 의해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통화정책 (monetary policy)

중앙은행이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화폐량과 이자율을 조절하는 정책을 말한다. 경제가 침체 상태에 있을 때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증가시켜 이자율을 하락시키고, 경제가 과열 상태에 있을 때에는 통화량을 감소시켜 이자율을 상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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