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1500억원대의 수익을 올리고도 세금을 내지 않은 한 선박업체가 관세청에 적발됐다.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선박을 등록하고 막대한 세금을 탈루하는 등의 수법이 ‘선박왕’으로 이름난 권혁 시도상선 회장 사례와 유사하다.
관세청은 해외에서 1582억원의 해운수입을 거두고도 이를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 비밀계좌에 은닉해 종합소득세 등 332억원을 탈루한 선박업체를 적발했다고 1일 발표했다. 이 업체는 국내 본사 소유 선박 19척을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올려놓은 뒤 해운사업을 하면서 발생한 선박 운항·임대·매각 소득 등을 국내로 신고하지 않고 해외 계좌에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업체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7년 동안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을 홍콩의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 명의 계좌에 숨겼다. 이 회사가 자금 출처를 숨기기 위해 만든 페이퍼컴퍼니는 무려 17개에 달했다. 선박회사 사주는 홍콩 계좌를 통해 외국인인 것처럼 위장, 국내 강남 아파트, 빌딩 등에 일부 자금을 투자한 사실도 드러났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해외에서 수입을 올렸을 경우 건당 50만달러가 넘으면 1년6개월 내에 국내로 소득을 들여오거나 한국은행에 소득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 선박회사의 경우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 소득신고를 누락하고 세금을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고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금을 회피했다는 점은 선박왕 권 회장의 사례와 유사하다. 하지만 선박회사가 국내법인이라는 점, 사주가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손성수 관세청 외환조사과장은 “권 회장의 경우는 국내 거주 여부가 쟁점이 됐지만 이번 건은 사주와 법인이 모두 국내에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선박회사는 수십년간 국내에서 해운업을 해온 중견업체로 알려지고 있다. 관세청으로부터 조사자료를 넘겨받은 국세청은 이 회사 사주에게 종합소득세 302억원, 주민세 30억원 등 332억원을 추징하겠다고 통보했다. 관세청은 재산 국외도피 여부를 추가로 조사한 뒤 사주를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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