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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복지증세 불가피하다면 부가세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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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확충은 피할 수 없는 과제…비용은 나눠 부담해야 의미있어
복지병 방지하는 장치도 필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증세 정책은 가장 인기가 없다. 정부가 세금을 올리려 할 때마다 조세저항은 항상 일어난다. 현재 일본 경제의 핵심 문제 가운데 하나는 과다한 국가부채다. 일본의 노다 총리는 부채 감축을 겨냥해 소비세 인상을 단행했지만 그 후폭풍으로 결국 정권을 잃었다. 유권자들의 이기심은 꼭 필요한 증세까지도 거부할 만큼 근시안적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세금 인상을 함부로 거론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증세의 부담이 소수에게 집중될 경우 정치인들은 큰 부담 없이 증세를 주장한다. 예컨대 부자증세가 그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은 복지확충을 약속하면서 그 비용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법인세와 고소득층의 소득세를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민주통합당은 선거에서 졌지만 이 공약을 패인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자증세를 격렬히 반대하는 의견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 현재 약 40%에 이르는 근로자가 근로소득세를 면제받고 있다. 반면에 부가가치세는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부담한다. 국민 모두가 증세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부가가치세 인상은 지난번 일본의 소비세 인상처럼 국민적 저항을 불러오기 쉽다. 이에 비해 부자증세는 소수 부자들의 부담만을 늘리기 때문에 국민 다수는 방관자일 뿐이다. 부자증세로 사회복지를 확충한다면 그 혜택을 누릴 다수는 찬성하기 쉽다.

온 세계가 국민을 부자 1%와 빈민 99%로 나누는 요즈음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한 사람만 부자이고 아흔아홉 사람은 가난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흔히 아흔아홉 사람의 민생을 위해 부자 한 사람이 돈을 대도록 결정한다. 최근 프랑스의 부유세가 좋은 예다. 비록 최고 소득 구간에만 국한되지만 부자는 소득증가분의 75%나 소득세로 내야 한다.

요즈음 아흔아홉 명이 한 명에 대해서 분개하는 이유는 한 명의 많은 재산과 높은 소득이 부당하고 부도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당하고 부도덕한 소득은 과세 대상이 아니라 압류 대상이다. 압류가 불가능해 고율의 세금 부과로 다스려야 할 경우에도 정당한 소득과는 분리해서 처리해야 한다. 단지 소득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소득까지도 통상의 누진세율을 벗어난 초고율의 세금으로 징벌하는 것은 다수가 소수에게 자행하는 테러일 뿐이다. 소수를 겨냥한 다수의 횡포는 다수결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취약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복지 확충을 선거공약으로 내걸면서 그 때문에 증세하는 일은 없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국정을 합리화하면 세금을 인상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재원을 빼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지예산을 마련하다 보면 반드시 증세를 단행해야 할 국면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증세하지 않기로 한 초기 다짐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복지 확충이라고 하는 본래의 큰 목표를 그르친다.

물론 국민과의 약속은 중요하고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한번 한 약속이더라도 바꿔야 할 때는 바꾸는 것이 옳다. 다만 약속 변경에는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민 대다수가 사업의 필요성과 증세의 불가피성을 납득하고 약속 변경을 동의한다면 ‘증세 없는 복지확충’의 공약에 집착할 까닭이 없다.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얻는 혜택이라면 누구나 과다하게 원한다. 그러므로 사회복지 확충을 비용 부담과 무관한 수혜자가 일방적으로 주도할 경우 반드시 복지병을 유발한다. 거꾸로 비용부담자가 일방적으로 복지를 주도하면 인색한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회복지의 획기적 확충은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국가적 과업이다. 인색하지 말아야 하지만 복지병을 불러도 안 된다.

자기 돈을 쓰는 개인은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민 대다수가 비용을 부담하면서 지켜보는 사업에서 정부는 재정을 낭비하기 어렵다. 새롭게 확충될 사회복지가 과다하게 치우치지 않으려면 그 비용부담을 되도록 많은 사람이 나눠 지는 것이 좋다. 부유세나 무증세보다는 부가가치세 인상을 통한 복지확충이 내실과 절제를 함께 갖춘 복지제도를 마련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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