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설 < 노동전문기자ㆍ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 upyks@hankyung.com >
프랑스 노·사·정 대표들은 지난 1월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내용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뤘다. 근로자 50명 이상 기업이 10명 이상을 해고할 경우 행정기관의 승인을 얻거나, 근로자의 과반수 찬성이 있으면 가능하도록 했다. 직원을 해고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했지만, 법원의 통제력을 약화시킨 것이다. 또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기업은 근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임금삭감과 직장 내 전환배치를 할 수 있게 됐다.
노동계에 유리한 합의도 이끌어냈다. 의료보험의 전체 근로자 확대 적용과 단기계약직에 대한 사용자의 고용보험료 인상 등이 노동계의 수확이다. 외신들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지만, 프랑스 언론과 노·사·정 관계자는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야심찬 합의안”이라고 치켜세웠다. 노사갈등이 극심하고 노조의 파워가 센 프랑스에서 이런 합의가 나오게 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일자리 망치는 '고용 과보호'
프랑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고용보호지수가 꽤 높은 나라에 속한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다른 라틴국가들과 함께 고용유연성이 경직돼 있는 편이다. 이 때문에 이들 나라의 고용률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OECD 고용전망 자료에 따르면 30개 회원국 중 고용유연성(고용보호지수 기준)이 높은 나라는 미국(1위) 캐나다(2위) 영국(3위) 덴마크(9위) 일본(7위) 등으로, 이들 나라의 고용률은 대부분 70%(2011년 기준)를 웃돈다.
반면 프랑스(26위) 그리스(25위) 스페인(27위) 이탈리아(20위) 등의 고용유연성은 2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고, 고용률도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60%에도 못 미친다. 프랑스(63.9%)는 한국(63.8%)과 비슷한 고용률을 기록했지만,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선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과도한 고용보호는 일자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때 복지병과 경기침체에 시달리던 독일은 2000년대 들어 노동개혁에 따른 고용유연성 확보로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파견근로를 전면 허용하고,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조치로 독일 전체 임금근로자는 2004년 3102만명에서 2010년 3426만명으로 늘어났다. 일본 역시 1999년 파견법 개정을 통해 파견허용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변경, 기업의 생산활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유연 - 안정성' 균형 필요
현대자동차가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데 이어 이마트를 비롯한 유통업체들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놓자 정부가 너무 기업을 압박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기업 여건을 도외시한 정규직화는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일자리도 없어질 것이란 우려다. 정규직 전환은 기업들의 자발적인 시도라기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개입과 그룹 오너의 구속 등이 복잡하게 얽혀 빚어진 측면이 많다.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힘쓰겠다”는 박 대통령의 다짐은 고용유연성보다는 고용보호에 주력해 기업 생산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들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비정규직 문제는 ‘양날의 칼’이다. 무리하게 고용 안정성에 집착하면 기업들은 경영난을 겪고, 고용을 꺼리게 된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고용을 무제한 허용하면 비정규직이 양산돼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 안정성과 고용 유연성 사이의 절묘한 균형과 타협점이 필요하다.
윤기설 < 노동전문기자ㆍ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 upyks@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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