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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사 여행] 유럽·중국 발전 격차, 사유화·자유계약 '제도'서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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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제도주의 선구자 더글러스 노스

제도경제학의 기초를 확립, 경제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연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더글러스 노스는 아버지가 생명보험회사 매니저인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캘리포니아대에 진학해 정치학 철학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며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다. 대공황으로 매우 힘든 미국 사회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마르크스 이념뿐이라고 여겼다. 노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뒤 경제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어떤 방향으로 연구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무렵 그를 매혹시킨 강의가 있었다. 경제이론을 바탕으로 해 복잡한 경제사를 풀어가는 멜빈 나이트 교수의 명쾌한 강의였다.

노스는 경제 성장의 역사에 경제이론을 잘만 적용한다면 세상의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순전히 역사적 사실만을 찾아 기술하는 무미건조한 역사학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래서 경제사에 관한 지식을 섭렵하면서 이론적 지식도 부지런히 축적했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이론을 통한 역사해석’에 몰입했다. 첫 연구는 미국 경제 성장의 요인에 관한 것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 노스가 확인한 것은 미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한 것은 기술 변동보다는 재산권의 확립, 계약 자유 등 경제활동에 우호적인 제도였다는 것이다.

제도란 법률, 재산권, 헌법 등과 같은 공식적인 제도와 관행, 관습, 도덕과 같은 비공식 제도를 말하는데 이런 제도는 한 사회 구성원의 행동 과정을 안내하거나 조종하는 일종의 게임 규칙이다. 제도만이 어떤 나라의 경제는 부유하게 되고 다른 나라의 경제는 가난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노스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를 만족스럽게 해명할 수 있으려면 ‘어떤 제도가 어떻게 번영을 가져다주는가’ ‘그런 제도가 어떻게 생성하고 변동하는가’ 등과 같은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래서 이론 없이 제도를 다뤘던 옛제도주의와는 달리 이론을 토대로 한 ‘신제도주의’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노스의 핵심 사상은 재산권을 보호하고 거래를 협상하고 계약을 집행·감시하는 거래비용을 최소화하여 상호간에 유익한 교환을 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하는 나라는 번영을 누린다는 것이다. 즉 경제자유와 재산을 확실하게 보호하는 나라는 번영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나라는 궁핍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본 축적, 규모의 경제, 기술 발전 등은 경제적 번영 그 자체이지 그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전통적인 성장이론이 다루지 않은 제도 분야를 채우고 있다.

노스는 제도경제학적 인식을 이용해 영국은 왜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고 스페인은 왜 침몰했는지를 밝힌다. 영국은 절대주의 시대에도 국왕의 권력이 의회의 제한을 받았기에 개인의 경제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절대군주의 힘이 강력해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의 침해가 빈번했다. 이것이 두 나라의 번영이 서로 차이나는 이유다.

중국과 유럽의 성장에 대한 노스의 비교사(比較史)도 흥미롭다. 15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보다 부유했던 중국이 지속적으로 침체의 길로 접어들어 20세기 중반에는 3000만명이 굶어죽는 대참사로 이어졌던 것은 권력이 중앙에 집중돼 경제자유와 사적 영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은 작은 나라로 나누어져 경쟁적이었고 분권적이었다. 그 결과 절대군주의 힘이 비교적 약해져 경제활동의 자유와 재산권이 잘 보호됐다. ‘유럽문명의 기적’은 그런 결과라는 것이 노스의 역사 해석이다.

유럽처럼 번영을 가져오는 좋은 제도가 있음에도 왜 나쁜 제도가 등장해 끈질기게 존속하는가. 공식적인 제도를 만들어내는 정치를 시민들이 완벽하게 감시통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생겨난다는 게 노스의 생각이다.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인위적인 계획을 통해 만든 실정법적인 공식제도만이 아니다. 관습, 공유된 믿음과 태도, 도덕 등 사회구성원들의 상호작용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비공식 제도는 장기적으로 오랜 경험을 통해 형성된 문화다. 변화 속도가 매우 느리고 인위적으로 바꾸기도 힘든 그런 문화가 경제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스는 비공식 제도의 분석에도 열중했다.

노스의 신제도주의 경제사의 백미는 신경과학과의 접목이다. 제도 생성과 변화를 결정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해석과 인지를 산출하는 ‘신념체계’인데 이를 형성하고 변동시키는 것이 물리화학적으로 작용하는 두뇌의 신경구조라는 지적이다.

노스의 신제도주의 경제사는 인간의 상호작용과 제도의 진화에 초점을 맞춰 인류의 발전사를 이해하기 위한 거대 담론이다. 그 패러다임은 경제학을 넘어서 사회철학, 신경과학, 정치이론, 공공선택론 등 학제를 융합한 첨단과학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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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종속이론' 오류 밝혀내

노스 사상의 힘

더글러스 노스의 핵심 사상은 역사, 제도적 환경, 경로의존성, 신념체계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없이는 경제의 변동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실천적 의미는 시장원칙을 확실하게 지키는 나라는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실패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의 사상은 기업가 이론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경제자유가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는 비판, 그의 이론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지니지 않는다거나 인류의 역사를 거래비용을 둘러싼 협상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지적 등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비판에도 노스의 사상은 역사에 대한 풍요로운 인식을 제공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중세의 영주-농노 관계를 신변 보호와 노동 제공의 교환관계로 이해함으로써 그 관계를 착취관계로 이해한 마르크스 이론을 개선했다. 중남미가 경제적으로 낙후된 이유를 선진국이 착취했기 때문이라는 종속이론은 잘못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노스는 1997년에는 신제도주의 국제학회를 창립해 제도연구를 확산시키는 데 진력했다. 그의 사상은 제도주의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경제학은 물론 정치학 법학 등에도 막중한 영향을 미쳤다. 실무에 미친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세계은행이 매년 발간하는 ‘세계개발보고서’에서 2003년에는 시장을 위한 제도 구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비롯해 그 후에도 제도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룬 것은 전적으로 노스의 영향이다.

후진국 개발경제학에 미친 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후진국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제도의 개혁, 특히 비공식 제도와 신념체계의 변화라는 것을 일깨웠다. 선진국의 제도를 이식한다고 해서 후진국이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명백히 했다. 이로써 그는 유엔과 세계은행의 개발원조 패러다임을 제도지향적으로 바꾼 인물이 됐다.

노스는 1993년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만든 ‘세계경제자유보고서’에도 참여했다. 이 보고서는 캐나다의 유명한 싱크탱크인 프레이저연구소가 90개국의 자유주의 연구소와 협력해 141개국의 경제자유지수를 계산해 각 나라의 순위를 정해 매년 발표한다.

경제자유지수는 노스가 개발한 것인데 재산권 보호, 노동시장 규제, 기업 규제 등 24개 항목을 기준으로 작성한다. 경제자유지수의 이론적 기초에는 규제와 조세 부담이 작을수록, 즉 경제자유가 많을수록 경제적 번영이 크다는 그의 제도사상이 담겨 있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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