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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동백꽃 활짝 핀 거제 지심도로 '봄마중'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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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초·매물·비진·한산도…숨막히는 파노라마…시간도 걸음을 멈춘다
황금빛 명사해변…맨발로 뽀드득 뽀드득…파도는 발등을 친다



봄이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도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분명 봄이다. 동장군의 심통은 여전하다. 아침 저녁으로 한기가 여전한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남녘 끝, 거제도로 간다. 봄을 만나고 또 그 속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지심도의 동백숲에서 봄을 느끼고, 거제도의 남부해안을 훑고 지나는 무지개길을 걸으며 온몸으로 봄을 품어볼 생각이다.

○실핏줄처럼 파고드는 마을길

지심도에 발을 들인다. 장승포 선착장을 떠나온 지 불과 20여분 만이다. 지심도 선착장에서 바라본 거제도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지심도 트레킹은 섬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아담한 선착장을 벗어나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른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이 구간은 지심도에서 유일하게 콘크리트로 메워져 있는 길이다. 지심도에는 차가 없다. 아니 차가 다닐 만한 길이 없다. 선착장과 마을을 이어주는 이 길이 유일하다. 섬 내 이동수단이라고 해봐야 자그마한 스쿠터나 자전거가 전부다. 콘크리트 길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마을 집들을 하나하나 꼼꼼히도 훑고 지난다. 마치 우리 몸 속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가는 실핏줄처럼.

마을을 벗어나며 길은 흙길로 모습을 달리한다. 콘크리트 위를 걸을 때와는 발끝에 와 닿는 느낌이 참 다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각사각 기분 좋은 소리도 들린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 좁아 보이는 숲길도 그즈음 시작된다.

숲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아담한 공터. 지심도 안내 책자에는 이곳을 운동장이라 적고 있다. 학교가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아이들이 공부하던 건물도, 뒤엉켜 놀았을 놀이기구도 남아 있지 않다. 학교가 사라진 섬에선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섬이 외로운 것은 아마도 육지와 섬을 가르는 바다가 있기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네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길

지심도는 아름다운 풍광만큼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말, 태평양전쟁에 혈안이 된 일본군이 해안 방어를 위해 섬 곳곳에 군사시설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데, 폐교 터를 지나 만나는 포진지와 탄약고, 동백숲 근처의 탐조등 보관소와 일본기 게양대 등이 그 상흔들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섬에서 아픈 과거와 마주하는 게 유쾌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쩌랴. 그 아픔까지도 우리가 보듬어야 할 역사인 것을.

포진지와 탄약고를 돌아보고 300m쯤 걸었을까. 하늘이 활짝 열리며 넓은 초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활주로라 불리는 곳이다. 지심도에서 가장 높은 이곳에서는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 활주로에 흔들의자와 망원경을 갖춘 예쁜 전망대도 조성해 놓았다. 덕분에 이곳 전망대는 지심도 기념촬영 명소로 자리잡았다.

활주로 구간을 지나자 동백나무가 만들어 놓은 숲의 터널로 들어선다. 지심도 트레킹의 백미는 지금부터다. 지심도는 예로부터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이라 불렸다. 실제로 지심도 숲의 70%는 동백나무다. 동백꽃이 개화하는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지심도는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동백으로 인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다.

동백터널로 들어서면 더 이상 하늘도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빽빽이 들어선 동백나무는 햇빛이 스미는 것조차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먹지 위에 흩뿌려진 흰 물감같이, 길 위에 듬성듬성 내려앉은 빛의 조각이 동백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동백숲을 벗어나 갈림길에 다다르면 섬의 끝도 멀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300m 정도만 가면 섬의 북쪽 끝인 망루가 나오고, 망루를 지나 짧은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길은 끝난다. 길의 끝에서 만난 광활한 바다는 여행자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시리도록 푸르다.

선착장으로 돌아올 때는 이미 지나온 동백숲을 거치지 말고 갈림길에서 선착장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낫다. 이 길에서는 아름다운 동백숲은 물론 멋스러운 대숲과 이제는 아담한 카페로 단장한 일본군 전등소장의 사택도 만날 수 있다. 갈림길에서 선착장까지는 완만하고 평탄한 길이 1.1㎞ 정도 이어진다.



거제 해안 구비구비…시리도록 푸른 남해…보석처럼 흩뿌린 섬

쌍근마을~ 저구마을 무지개길

거제도에서 지심도 동백숲길만큼 아름다운 길이 바로 무지개길이다. 무지개길은 거제시 남부면 탑포리 쌍근마을에서 저구리 저구마을을 잇는 남부해안도로의 다른 이름. 그 시작은 아담한 어촌마을인 쌍근마을이다. 쌍근마을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아담한 어촌 풍경이 기다린다. 짭조름한 바다내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그마한 어선들의 모습도 무척이나 정겹다. 쌍근마을에선 갯벌체험, 통발체험, 후릿그물체험 등 다양한 어촌체험을 할 수 있다. 마을 앞 갯벌은 봄부터 여름까지 어촌체험을 즐기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정류장 옆으로 보이는 멋스러운 3층짜리 건물은 체험객을 위한 숙박시설이다.

○꿈꾸듯 아름다운 남부해안로 무지개길

버스 정류장을 지나 해안길을 따라 700여m를 가면 임도가 시작된다. 이곳이 거제 무지개길의 실질적 들머리다. 별다른 이정표는 없지만 외길이라 찾기는 어렵지 않다.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무지개길은 쌍근마을을 감싸고 있는 왕조산 허리를 따라 저구마을까지 이어진다. 거리는 8㎞ 남짓. 짧은 거리에다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가파르지 않아서 크게 힘들지는 않다. 걷다보면 언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경사를 느끼지 못하고 걷게 된다. 전망도 일품이다. 고개만 돌리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그 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남해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그 멋스러움에 몇 발짝 옮기지도 못하고 자꾸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 멋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무지개길 전망대에 서면 용초도, 매물도, 비진도, 한산도 등 보석 같은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무지개길은 전 구간이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애초에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길이니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자꾸 아쉬움이 남는다. 흙길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욕심은 거기까지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는 길이 얼마나 많은가. 경제 논리로만 따지자면 쌍근마을과 저구마을 사이에 미끈한 1018번 지방도가 생겼으니 구불구불 불편한 무지개길은 사라지는 게 순리다. 그러나 이 길은 지금껏 남아 있지 않은가. 그것도 빨리 가기 위한 길이 아니라 천천히 가기 위한 길로….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명사해변 여린 파도에 피로가 싹~

무지개길에서 내려서면 저구마을이다. 아담한 어촌 풍경이 쌍근마을만큼이나 정겹다. 저구마을은 여행자들에겐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거제도와 소매물도를 오가는 유람선이 이곳 저구항에서 출발하고, 멋진 백사장을 품고 있는 명사해변도 저구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명사해변은 고운 모래와 깨끗한 물로 구조라해변과 함께 거제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명사해변은 저구항을 지나 한 굽이만 돌아서면 만날 수 있다. 활처럼 휘어진 해변을 가득 메운 황금빛 모래가 눈부실 정도다. 300m 남짓한 아담한 해변이지만 고운 모래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 참 야무져 보인다. 해변 길은 답답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찬찬히 걸어보는 게 좋다. 발이 푹푹 빠지는 마른 모래 위를 걷는 기분도 좋고, 뽀득뽀득 예쁜 소리를 내는 물기 머금은 모래 위를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찰싹찰싹 발등을 치고 지나는 여린 파도의 느낌도 빼놓을 수 없다. 걷는 동안 쌓인 피로가 파도에 실려 저만치 달아나 버린 느낌이다.

무지개길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저구마을과 명사해변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거제의 명품 해안도로인 홍포·여차 전망도로가 나온다. 그래서 여기에서 걸음을 멈추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기로 한다.

○거제의 명품 홍보·여차 전망도로

명사해변을 벗어나면 길은 1018번 지방도와 몸을 섞는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홍포·여차 전망도로까지는 어쩔 수 없이 차도의 일부를 빌려 걸어야 한다. 차도를 따라 3㎞ 남짓 가면 홍포·여차 전망도로가 시작된다. 거제도 최남단에 있는 망산의 허리를 타고 지나는 홍포·여차 전망도로는 그 이름처럼 최고의 해안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이 흙길로 남아 있어 걷기 여행자에게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홍포·여차 전망도로의 정점인 전망대는 비포장 구간이 시작되는 곳에서 1.6㎞ 떨어져 있다. 나무 데크로 산뜻하게 조성해 놓은 이곳에 서면 대병도와 소병도, 매물도, 소매물도 등대가 한눈에 담긴다. 최근에는 전망도로가 시작하는 홍포마을 들머리에도 전망대 하나가 새롭게 들어섰다.

전망대를 지나면 길은 내리막이다. 발아래로 여차몽돌해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차몽돌해변은 홍포·여차 전망도로의 끝점이다. 거제를 대표하는 몽돌해변으로는 학동 흑진주몽돌해변이 첫손에 꼽히지만 여차몽돌해변 역시 동글동글 모나지 않은 몽돌과 완만한 수심으로 인해 여름철 피서지로 사랑받는 곳이다.

여차몽돌해변으로 들어서면 꿈같이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했던 여행길도 마무리된다. 해변에 앉아 몽돌의 재갈거림을 들으며 지나온 길을 다시금 되돌아본다. 아련하고 아름다운 그 길을. 그러고 보니 그 길 위에는 참 많은 무지개가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정겨운 어촌마을의 풍경, 명사해변의 황금빛 모래,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이름 모를 야생화의 여린 꽃봉오리 등등. 망산 너머로 천천히 해가 지고 있다.


지심도 왕복 여객선…평일 5회·주말 9회 운항…멍게비빔밥, 거제도 별미

여행 팁

거제도로 떠나온 봄 마중 길에 옛 구조라초등학교를 빼놓을 순 없다. 이곳에 국내에서 가장 빨리 꽃을 피우는 매화, 춘당매가 있기 때문이다. 수령 120~150년인 춘당매는 구조라초등학교 교정에 네 그루, 마을 입구에 한 그루가 있는데 매년 1월10일께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입춘을 전후해 만개한다. 올겨울 추위가 유난해서 예년보다 개화가 더디지만 벌써 꽃망울이 터졌다.

장승포항에서 지심도로 오가는 여객선은 장승포여객터미널 옆의 동백섬지심도터미널(055-681-6007)에서 평일 5회(08:30 10:30 12:30 14:30 16:30) 토·일·공휴일 9회(08:30 09:30 10:30 11:30 12:30 13:30 14:30 15:30 16:30) 왕복 운항한다. 왕복 운임은 어른 1만2000원, 어린이 6000원.

지심도에는 15가구 3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데 이 중 13가구에서 민박을 한다. 동백하우스(011-859-7576) 동백섬민박(010-3655-2411) 황토민박(010-4722-0323) 섬마을바다풍경(011-9592-7672) 등이 깨끗하다. 여차홍포전망도로가 끝나는 여차몽돌해변 주위에는 엘피라펜션(010-2515-5968) 여울펜션(055-638-4200) 노블펜션055-632-8817) 꿈에그린펜션(055-632-8811) 등 깔끔한 펜션들이 여럿 모여 있다. 거제도를 대표하는 먹을거리라면 멍게비빔밥을 들 수 있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바로 옆의 백만석(055-638-3300)이 멍게비빔밥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장승포 동백섬지심도터미널 부근에도 많은 식당이 모여 있다.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천화원(055-681-2408)은 중화요리로, 항만식당(055-682-3416)은 해물뚝배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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