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소송 파급영향 주목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돌려달라고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고객이 승소한 첫 판결이 나왔다. 작년 11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신용협동조합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출자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그 이후 법원은 줄곧 은행 측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5단독(판사 엄상문)은 20일 장모씨가 2009년 9월 신한은행에서 1억원을 빌리면서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 비용 75만1750원을 돌려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근저당권 설정 비용이란 금융회사에 부동산을 담보 맡기고 돈을 빌릴 때 발생하는 부대비용으로 등록세, 교육세, 등기신청 수수료 등이다. 통상 1억원 대출 때 70만원 안팎이 든다.
재판부는 “근저당권 설정비를 장씨가 부담하기로 개별약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신한은행에 부당이득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근저당권 설정 비용 반환소송과 관련해 고객 손을 들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해 12월6일과 이달 8일 고객 99~270명이 국민·하나은행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7부 및 30부, 20부 등에 제기한 재판에서는 모두 은행이 이겼다. 이들 재판부는 “은행 약관이 비용을 고객에게 무조건 부담시킨 것이 아니라 금리를 낮추는 등 선택권을 부여했다”며 불공정약관 주장을 일축했다.
원고를 대리한 이양구 법무법인 태산 변호사는 “다른 재판에서는 원고 숫자가 너무 많아 설정비 부담에 관한 합의가 실제로 있었는지 증거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은행이 보관 중인 관련 서류를 제출토록 하는 등 증거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경우 기존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고객 패소 판결이 이어지면서 관련 소송 확산이 차단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날 판결로 논란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이미 작년 금융소비자연맹, 한국소비자보호원 등 4만2000여명이 제기해 서울중앙지법에 계류 중인 근저당권 설정 비용 반환소송만도 20개가 넘는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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