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서시(序詩) 일부)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은 1917년 북간도(현재 중국 옌볜) 명동촌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를 다니던 열두 살 때 친구들과 ‘새 명동’이라는 잡지를 만들 정도로 문학에 소질을 보였다. 중학교 때는 축구선수로 뛰고, 웅변대회에 나가 장원을 할 만큼 외향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처녀작 ‘삶과 죽음’을 비롯 ‘초한대’ 등 수십편의 시를 학창 시절 쏟아냈다.
탄탄대로였던 그의 삶은 1938년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를 입학하면서 달라졌다. 의사가 돼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들어간 연희전문 문과 생활 4년은 선생의 잠재된 민족의식을 깨웠다. 졸업 무렵 ‘별 헤는 밤’ 등 엄선작 18편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엮었다. “일제에 의해 체포될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로 생전엔 출간되지 못했다.
그는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진 직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게 고국과 영원한 작별이었다. 1943년 귀국 준비 중 조선인 유학생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고 1944년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됐다. 1년 뒤 선생의 가족 앞으로 전보 한 통이 도착했다.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 오라.’ 68년 전 오늘, 선생의 나이 28세였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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