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공약 내놓고 "1조5천억으로 가능"
朴의 말 바꾸기·인수위 不通이 혼선 불러
與, 대선토론회 다음날 "간병비 포함안돼" 해명
인수위 "약속한 적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대선에서 공약했던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진료비 국가 부담’ 수정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가 부담 항목에서 선택진료비(특진료)와 상급병실(1~2인실) 입원비, 간병비 등 3대 비급여(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 항목을 포함시키지 않기로 한 것을 두고서다.
○말 바꾼 것 맞나
일부 언론이 ‘공약 수정’이라고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6일 “공약 수정이 아니라 대선 때부터 3대 비급여 항목에 대해 보험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며 적극 해명에 나섰다. 그럼에도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복지·노인단체 회원들이 7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로 몰려와 “4대 중증질환 국가 전액 부담 약속을 지켜라”며 항의 집회를 여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인수위 측은 ‘공약에 대한 오해’라는 주장이고, 시민단체는 ‘명백한 공약 위반’이라고 맞서면서 진실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문제는 ‘모호한 공약’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4대 중증질환 공약이 확정된 것은 지난해 12월 초. 당시 발표한 공약집에는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으로 명시돼 있다. 관련 세부 내용은 두 문장이다.
‘4대 중증질환에 대해 총 진료비(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를 건강보험 급여로 추진한다. 이를 통해 현재 75% 수준인 4대 중증질환의 보험 보장률(비급여 부문 포함)을 단계적으로 2016년까지 100%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 공약만 놓고 보면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에 대해서도 진료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공약이 발표되자 재원과 실현 가능성을 놓고 일부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박 당선인 측이 공약 재원으로 추산한 1조5000억원(연간)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 외에 환자의 선택에 의한 부분은 보험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공약에는 당연히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혼선 어떻게 정리하나
하지만 박 당선인이 토론회에서 이를 모호하게 설명하면서 문제가 다시 꼬였다. 지난해 12월10일 2차 TV토론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 후보를 상대로 “문 후보님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를 다 건강보험료 안에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상당히 큰 부담이다. 해결 가능하겠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 것이다.
이어 12월16일 3차 TV토론에서는 박 당선인 스스로 말을 바꿨다. 문 후보가 4대 중증질환 재원에 대해 “간병비도 보험 대상이냐. 선택진료비까지 보험급여로 전환하면 1조5000억원으로는 어려울 텐데 충당 가능하냐”고 묻자 박 당선인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것이 논란을 빚자, 바로 다음날 새누리당은 해명자료에서 “박 후보는 간병비가 진료비에 포함되지 않음을 명확히 알고 있다…(중략)…3대 비급여 항목에 대해 재원이 마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단계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바로잡았다.
결국 4대 중증질환 공약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인수위 단계로 넘어왔다. 하지만 인수위에서 내부 논의 과정을 모두 보안에 부쳐 언론에 공개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추측기사를 양산해냈다. 그 결과 공약 수정 논란이 벌어졌고, 인수위는 최종적으로 “3대 비급여 항목은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정책을 집행하는 당사자인 보건복지부는 물론 전문가들조차 “설익은 공약을 서둘러 내놓은 뒤 재원 문제 등이 불거지자 뒤늦게 세부안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품고 있다. 일각에선 모호한 공약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미룬 인수위가 혼선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의료 수요자들에 대한 해명과 설득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4대 중증질환 진료비는 당초 공약대로 국가가 전액 보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만큼 사실을 바로잡고 설득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종태/이호기 기자 jtchung@hankyung.com
▶급여·비급여 항목
진료비는 건강보험 적용 여부에 따라 급여·비급여로 나뉜다. 4대 중증질환의 경우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항목이 전체 진료비의 25%(평균)로 다른 질환에 비해 높다. 비급여 항목은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외에 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촬영, 컴퓨터단층촬영(CT), 내시경, 처치수술, 제증명 수수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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