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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현 대표 "자살 생각하던 날 일으켜세운 건 긍정의 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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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상고출신 은행원이 중견 자산운용사 대표에 오르기 까지…

'긍정으로 턴어라운드하라'…차문현 우리자산운용 대표 발간



가난했던 열아홉 살의 청년은 교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상업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지방은행에 들어갔다. ‘상고 출신’이란 이유로 승진 때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스물아홉 살에 늦깍이 야간대학생이 됐다. 월급의 3분의 1을 어학 공부에 쏟아부었다. 시중은행으로 옮겨 42세에 강남지역 지점장이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외환위기 때 은행이 퇴출되면서 직장을 잃었다. 시련은 그를 더욱 강하게 했다. 증권사 임원으로 재기, 현재 중견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8년째다.

차문현 우리자산운용 사장(59·사진)의 스토리다. 차 사장은 은행, 증권사, 투자신탁을 거쳐 자산운용사 대표에 오르기까지 40년간 금융업계에 종사하면서 겪었던 내용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긍정으로 턴어라운드하라’를 최근 펴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턴어라운드의 길을 걸어왔던 지난 세월이 담긴 메모장을 정리해 책으로 만들었다”며 “자기 반성 차원에서 낸 것”이라고 말했다.

책 속에 담긴 그의 이력은 다채롭다. 1972년 경남상고(지금 부경고) 졸업 후 부산은행에 입사했다. 1989년 동화은행으로 옮겨 1996년에 도산로지점장이 됐다. 1998년 은행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뒤 우리사주 대출금과 직원 빚보증으로 빚더미에 앉았다.

“눈앞이 캄캄했죠. 자살도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한강변을 달렸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하면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었습니다.”

긍정의 최면은 주효했다. 2개월 뒤 제일투자신탁(현 하이투자증권)에 법인영업담당 이사로 간신히 재취업했다. ‘은행원 출신이 무슨 증권업무를…’이라는 시각이 따가웠다. 결과는 아니었다. 3년 만에 수탁액 3조원을 유치했다. 2005년엔 유리자산운용 대표로 취임했다. 당시 8000억원의 수탁액을 4년도 안돼 4조원 이상으로 불렸다. 지금 재직 중인 우리자산운용도 지난해 창사 이후 최대 수탁액(19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차 사장은 “남들보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상고 출신으로 가방끈도 짧지만 새로운 신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한 것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경에 순응하기 보다는 턴어라운드를 위해 수없이 자기암시와 다짐을 하면서 살았다”며 “시련을 동반자로 여기고, 사람을 얻으려 노력했으며, 긍정적 생각을 계속한 것이 성공 자산이었다”고 회고했다.

차 사장은 우리 나이로 예순 살이다. 그가 지금부터 추구하려는 삶은 ‘슬로&스테디(slow&steady)’다. “그동안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쉼없이 달려 왔다면 이제는 삶을 좀 더 깊이 있게 돌아보면서 주변과 어울리며 살겠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추진력이 부족하다”며 “젊은이들이 스스로 결핍의 요소를 찾아 동기를 부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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