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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역경 딛고 재기에 성공한 ‘더크로스’ 김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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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혁건 씨 (사진 = 양윤혁 대학생기자)

[캠퍼스 잡앤조이= 박해나 기자/양윤혁 대학생 기자] ‘So you don’t cry for me,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 <don’t cry="">의 원곡자 김혁건 씨. 그의 모습은 ‘슈퍼맨’을 연기하다가 사지 마비 장애인이 됐지만, 다양한 사회활동을 이어나가며 감동을 선사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를 떠올리게 한다. 김 씨는 2000년대 초반 밴드 ‘더크로스’의 메인 보컬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긴 시간 동안 병상에서 절망의 시간을 보냈지만 김 씨는 역경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don’t>



△ 더크로스 메인보컬로 활동하던 모습 (사진 제공 = 김혁건)




치열하게 진행 중인 ‘제2의 인생’

김 씨는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진행하는 동시에 강연, 음반 작업, 봉사활동 등을 이어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타자를 칠 수 없어 누군가가 논문 쓰는 것을 도와줘야 하고, 매일 아침 누군가 일으켜줘 휠체어에 앉고 , 복식호흡 장치를 끼워야만 노래를 할 수 있지만 그는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는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마비군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비 마비군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처럼 노래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여러 공연과 강연 활동을 함께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넌 할 수 있어>라는 앨범과 동명의 에세이집도 발간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내 책을 읽는 사람 둥 단 한 명이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전했다.



△ 장치의 도움으로 노래를 다시 시작한 김혁건 씨 (사진 제공 = 김혁건)


깜깜한 터널 속에서의 시간

지금은 밝은 표정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김 씨는 꽤 오랜 시간 ‘부정·분노·우울’의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한다. 그는 “사고를 겪은 대개의 장애인은 ‘부정’을 한다”며 “‘나는 장애인이 되지 않았어’, ‘나아질 거야’, ‘재활하면 돼’라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현실을 부정하다가는 이내 분노를 하고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저처럼 전신마비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은 죽을 수도 없어요. 우울한 시간이 찾아오는 거죠. 그렇게 한참이 지나면 마침내 수용의 시간이 찾아와요. 그제서야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대로의 삶에서 최대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병상에 누워있는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다는 슬픔이었다. 김 씨는 “손이라도 자유롭다면 기타를 치거나 피아노를 친다는 희망이 있었을 텐데, 말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은 절망스러웠다”며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절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머리, 엉덩이, 다리 등이 썩어 긁어내고 매일같이 혈액투석을 받았다. 대소변을 조절하지 못해 사람들 앞에 알몸을 보이는 일도 다반사였다. 자존감은 무너졌고 고통은 그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응원 덕분이었다. 김 씨는 “주변에서 계속 ‘넌 할 수 있어, 한 글자씩 녹음하면 돼’, ‘넌 할 수 있어. 내가 호흡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라며 힘을 줬다”고 말했다. 덕분에 그는 용기를 내 새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폐부를 압박하는 장치를 사용해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2014년 스타킹에 출연한 그는 이 장치를 ‘악기’라 말하기도 했다. 

“정말 악기와 같아요. 세게 누르면 고음을 낼 수 있고, 약하게 누르면 소리를 작게 낼 수도 있게 해주는 악기죠. 저는 이 장치를 정말 사랑해요.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주죠. 만약 장치가 없다면 삶의 희망이 없을 것 같아요.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돼버렸거든요. 기타리스트의 기타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네요.” 



△ 김혁건 씨는 강연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사진 제공 = 김혁건)


좋아하는 일을 좇아보자

이토록 음악을 사랑하는 김혁건이 처음 음악의 꿈을 가슴에 품은 것은 언제일까? 그는 “4~5살에 AFKN(주한미군방송)에서 마이클 잭슨이 노래하는 것을 봤다”며 “흑백TV가 컬러TV로 바뀌는 시기였는데 빨간 징이 박힌 바지를 입고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나도 무대 위에서 환호를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높은 벽을 느낄 때가 많다. 김 씨 역시 그런 시간을 겪었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자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 힘들었다”며 “하지만 내가 감정을 담아 노래하고 그 노래를 사랑하는 팬이 있다면 된거다. 굳이 누구보다 잘하려고 가수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남보다 잘 하려는 마음으로 인한 경쟁의식과 도전정신 때문에 지나치게 힘들어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 김 씨가 찾아낸 교훈이다. 그는 “예전만큼 노래를 잘 하지 않지만, 지금은 행복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는 사회를 넓게 둘러볼 것을 조언했다. “젊은 사람들이 장애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사회를 돌아보고 더 힘든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젊은 사람들이 먼저 시작할 때 우리나라가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음악인 김혁건의 계획은 무엇일까. 그는 “더크로스 밴드 신곡을 녹음했고, 세계적인 행사에 초청돼 노래를 부를 예정”이라며 “기회가 되면 해외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장치를 통해 장애인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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