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보스니아 내전의 핵심 전범인 라트코 믈라디치의 장례식에 큰 인파가 몰리며 그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통신에 따르면 전날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외곽의 작은 성당 앞에서 수천명의 추모객이 몰린 가운데 세르비아정교회의 포르피리예 총대주교가 장례 예배를 집전했다.
무장 군인이 믈라디치의 시신이 담긴 관을 호위했고, 군악대가 뒤따랐다. 사람들은 세르비아 국기와 믈라디치의 사진을 들고 운구 행렬에 동참했다. 관에 입을 맞추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세르비아 국방장관, 법무장관 등 각료 여럿과 주세르비아 러시아 대사, 보스니아-세르비아 자치정부의 대통령을 지냈던 밀로라드 도디크 등이 행사에 참석했다.
포르피리예 총대주교는 "우리는 그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고 이에 감사하는 대다수 세르비아 정교회 신자들의 기억과 기도 속에 그의 이름이 깊이 새겨질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믈라디치의 아들 다르코가 관이 무덤에 매장되기 직전 "그들이 우리의 영웅들에 대한 재판소를 만들어 수호자를 범죄자로, 배신자를 영웅으로 둔갑시킨다"고 외치자 사람들이 "영웅"을 연호하며 화답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스릅스카 자치공화국에서 왔다는 라도이카 비시치는 "민족 영웅인 장군을 배웅하고자 이곳에 왔다"고 AFP에 말했다. 세르비아계 인구가 많은 스릅스카에서는 믈라디치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분위기다.
세르비아 남서부 프리예볼레에서 왔다는 조르제는 "그는 위대한 군사전략가였다"고 말했다.
믈라디치에게 예우를 다하는 장례식 분위기를 두고 반발이 나왔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크로아티아계 지역에서는 믈라디치의 장례식을 생중계한 방송 신호가 차단됐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장례식에 항의하는 뜻으로 대사와 영사를 제외한 모든 대사관 직원을 베오그라드에서 철수시킨다고 선언했다.
유럽연합(EU)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1990년대 발칸 서부 지역의 무력 충돌은 유럽 근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 중 하나였다"며 "전쟁 범죄자 미화, 학살 부인, 역사 왜곡은 유럽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에 위배되며 EU나 EU 가입 후보국에 설 곳이 없다"고 밝혔다.
'발칸반도의 도살자'로 불리는 믈라디치는 19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동북부의 무슬림 마을 스레브레니차에서 8천여 명이 몰살된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비롯해 보스니아 내전 당시 벌어진 세르비아계 군대의 잔학 행위를 지휘한 혐의로 2017년 유엔 전범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은 1990년대 초 동구권 공산주의 체제 붕괴 후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과정에서 민족·종교 갈등이 폭발하면서 발발했다.
유고 연방에서 탈퇴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에 이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독립을 추진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세력이 독립 찬성파인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와 극한 대립하며 1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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