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열사 기념관서 검사복 기증식…31년 만에 전시복 교체
"내년 순국 120주년…'안네의 집'처럼 자리매김하려면 국민 관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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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119년 전 순국한 이준 열사가 후배들이 가져온 법복을 입게 됐어요. 역사의 또 다른 매듭이 지어져 감개무량합니다."(송창주 이준 기념관 관장)
일제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다 순국한 '헤이그 특사' 이준(1859∼1907년) 열사는 국권 회복을 위해 힘쓴 애국지사이기에 앞서 국내 최초의 검사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1896년 조선 최초의 근대적 법률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를 1회로 수료한 뒤 한성재판소 검사 시보로 임명된 그는 불의를 참지 않는 강직한 모습으로 백성들에게서 '호법신'(護法神)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로도 불렸다.
이준 열사의 항일 정신이 서려 있는 유럽 유일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인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3일(현지시간)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1995년 8월 개관 이래 이준 열사가 순국 당시 호텔 방이었던 전시실의 한켠을 지켜온 이준 열사의 양복이 검사들이 입는 법복으로 교체된 것.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 당시 찍힌 이준 열사의 사진을 토대로 네덜란드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제작된 이 양복은 이준 열사의 생전 마지막 활동 모습을 증언하면서, 30년 넘게 관람객들을 맞이하느라 세월의 더께가 두껍게 쌓여 있던 차였다.

이날 이준 열사 기념관의 의상 교체는 국제검사협회(IAP) 본부 방문차 헤이그를 찾은 박진성 법무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송창주(85) 관장과 그의 남편 이기항(90) 이준 아카데미 원장에게 법복을 건네는 조촐한 전달식을 연 직후 이뤄졌다.
법복 기증은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이던 2007년 검찰이 한국 검사의 시발점 격인 이준 열사를 기리기 위한 뜻으로 약속한 것이라고 한다.
당초 검찰은 이준 열사가 검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법복을 재현한 뒤 기념관 측에 전달하려 했으나, 당시 사진이 전무한 데다 사료 역시 부족한 탓에 고증 노력을 접고 부득이하게 현재 검사들이 입는 법복을 전달하게 됐다고 송 관장은 설명했다.
박 검사장은 전달식에서 "검찰의 자긍심으로 여겨지는 이준 열사를 기념하는 역사적 장소에 뒤늦게나마 법복을 전달할 수 있게 돼 의미 깊다"며 "이번 행사를 조국을 위해 이역만리에서 장렬히 순국한 이준 열사의 조국애와 정의에 대한 기개를 마음 깊이 새기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준 열사가 순국 당시 체류했던 호텔이 있던 건물을 사재를 털어 매입한 뒤 기념관을 열어 30년 넘게 직접 운영해 오고 있는 네덜란드 교민 송 관장 부부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송 관장은 "이준 열사 기념관은 한국 40년 독립운동사의 가장 앞자락이자, 유일무이한 국가 차원의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로 한국이 꼭 지켜야 할 역사 문화의 영토"라면서 "오늘 행사로 역사의 또 한 매듭이 지어져 감개무량하다"고 감회에 젖었다.
남편인 이 원장은 "이준 열사는 비단 항일 운동가를 넘어, 정의가 서야 평화가 있다는 철학을 실천하며 세계 평화 운동에 자극을 준 분"이라면서 "31년 전 이곳의 문을 열며 이준 열사의 흉상을 제막한 데 이어 이준 열사 순국 119년이 지난 오늘 검사 후배들이 찾아와 관복을 입히는 걸 보니 감격스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행사에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국제사법재판소(ICJ), IAP 등 법조 관련 국제기구가 다수 위치한 주네덜란드 대사관에 파견된 검찰 소속 김대현 법무관과 네덜란드 대학에서 유학 중인 검사들을 비롯해 총 5명의 검사가 배석해 이준 열사의 법복 교체를 도왔다.
전시장에서 내려진 이준 열사의 양복은 자료관으로 옮겨 보관된다.

송 관장은 내년이 이준 열사의 순국 120주년이라고 소개하면서, 법무부와 함께 한국의 어린 학생들과 청년들을 상대로 이준 열사의 정신을 교육하고 알리는 행사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이날 피력했다.
이에 박 부원장은 "나라와 검찰이 할 일을 두 분이 해왔다"고 사의를 밝히며 "본부에 잘 전달하겠다"고 화답했다.
송 관장은 "암스테르담에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박해를 받은 유대인의 참상을 증언하는)'안네 프랑크 집'이 있다면, 헤이그에는 '이준 평화 박물관'이 있다는 걸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지만, 저희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국민적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공부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이준 열사를 비롯해 이상설, 이위종으로 구성된 '헤이그 특사' 3인방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밀지를 받고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 1907년 6월 헤이그에 도착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은 세계 각국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하며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상을 알리는 등 장외 외교 투쟁을 벌였다. 이준 열사는 그 와중에 그해 7월 14일 당시 머물던 드용 호텔에서 순국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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