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액제에서 동적 가격제로…AI 요금 체계 대전환
GPU, 원유·전력처럼 거래…컴퓨트 시장 상품화

(서울=연합뉴스) 권하영 기자 = 인공지능(AI) 서비스 요금이 전기요금처럼 수요·공급에 따라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AI 연산을 담당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원유·전력처럼 벤치마크와 선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원자재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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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컴퓨트 시장, 종량제 넘어 동적 가격으로
23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발간한 'AI 컴퓨팅 파워는 상품이 되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AI 컴퓨트 시장은 지난해 3천600억 달러에서 2030년 약 2조3천억 달러 규모로 급팽창할 전망이다.
AI 컴퓨트란 AI 모델 학습이나 사용자 요청 처리에 투입되는 컴퓨팅 자원으로, GPU 칩과 그 사용료, 최종 사용자에게 청구되는 토큰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기업과 개인을 가릴 것 없이 AI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 자원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시장 팽창과 맞물려 AI 서비스 요금 체계도 근본적인 변화를 맞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까지 앤트로픽·오픈AI 등 AI 개발사는 기업 고객에게 월정액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수요가 급증해 서버가 한계에 부딪히면 요금을 올리는 대신 속도를 제한하거나 사용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소비자는 같은 비용을 내면서 서비스 품질 저하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액제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는 양상이다.
앤트로픽은 AI 컴퓨트 부족 심화를 이유로 올해 4월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좌석당 월 20달러 기본료에 API 사용량만큼 추가 요금을 내는 종량제로 전환했다. 오픈AI 역시 코덱스의 요금 방식을 메시지 정액에서 토큰 종량제로 바꿨다.
전문가들은 다음 진화 단계로 '동적 가격제'를 지목한다. 전력 도매가가 한여름 낮에 치솟았다가 심야에 내려앉듯, AI 서비스 비용도 수요·공급 흐름에 따라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구조로 바뀔 것이라는 분석이다.
◇ AI도 원유·전력처럼 거래…컴퓨팅 시장 본격화
요금 체계의 변화는 AI 컴퓨트 시장 전반이 근본적인 구조 전환을 맞고 있다는 신호다.
현재 AI 컴퓨트 시장의 가격은 불투명하다. 공개된 가격과 실제 거래 가격이 따로 놀고, 대부분의 계약은 할인·사전 예약·기업 간 협약 형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체결된다. 가격 기준도 제각각이어서 같은 GPU임에도 어느 지수를 참조하느냐에 따라 같은 날 가격이 최대 41% 차이 나기도 한다.
가격 변동성도 심하다. 엔비디아 H100 GPU의 시간당 임대료는 2024년 초 약 8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말 1.96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4월 2.64달러로 반등했다.
BCG는 이를 시장 구조 자체의 문제로 진단하며 불투명한 가격 체계에서 벗어나 유동적이고 투명한 시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고 사례로는 원유 시장이 꼽힌다. 원유 역시 산지·황 함량·점도 등이 제각각인 이질적 상품이지만, 유가공시기관(PRA)이 실거래 데이터를 수집·표준화해 공개하면서 브렌트유·WTI가 전 세계 기준 가격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BCG는 AI 컴퓨트가 단일 글로벌 가격이 형성되는 원유보다는 지역별로 효율적인 시장을 형성하는 전력 시장의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연산이 반드시 데이터가 존재하는 곳에서 이뤄져야 하는 특성상 지역 간 차익 거래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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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경쟁, 이제 '비용 관리'가 승부처
AI 컴퓨트 시장이 투명해질수록 그간 불투명한 거래 구조에 가려져 있던 잠재 가치도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 BCG는 이를 '다크 밸류'로 정의한다. 자본·재화·서비스의 수급 비효율로 인해 시장에 잠재돼 있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치를 뜻하는 개념이다.
BCG는 AI 컴퓨트 시장의 상품화가 본격화할 경우 다크 밸류가 연간 최대 1천4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AI 칩 시장에서 최대 170억 달러, 컴퓨트 임차 시장에서 최대 340억 달러, 엔드유저 토큰 시장에서 최대 460억 달러의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시장이 효율화될수록 이를 선점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비용 격차도 벌어질 수 있다. 결국 가격 변동성에 대응하는 비용 관리 전략이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훈 BCG 코리아 MD파트너는 "한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전력설비 등 AI 인프라 수요의 수혜를 받고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AI 모델과 컴퓨팅 자원을 비싸게 사는 소비자기도 하다"며 "이제 기업의 AI 경쟁력은 단순히 좋은 모델 도입을 넘어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는 역량에서 갈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MD파트너는 "문서 요약이나 이메일 작성 같은 범용 업무에서는 비용 효율을 높이는 한편, AI를 활용해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재설계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만드는 영역에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정 공급사에 종속되지 않도록 모델·가격·품질을 상시 점검하고 필요할 때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도 향후 가격 변동성에 대응하는 중요한 준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kwonh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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