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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로마의 '한니발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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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로마의 '한니발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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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시선] 로마의 '한니발 트라우마'


    (로마=연합뉴스) 민경락 특파원 = "한니발이 알프스산맥을 넘은 비밀이 밝혀졌다!"
    이주민 수만 명이 하루 만에 모로코에서 북아프리카의 스페인 자치령 세우타에 진입한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온라인에서는 옛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등장했다.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지금의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출발해 보병 수만 명과 코끼리 수십 마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반도로 진군했다. 그 춥고 험준한 산맥을 정확히 어느 길로 넘었는지는 2천년 넘게 논쟁거리다.
    그런데 갑자기 그 전설 같은 여정의 비밀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정부가 스페인발 입국자에 한해 '국경 통제(검문 강화)'라는 강수를 둔 직후였다. 세우타에 진입한 이주민이 곧 이탈리아 국경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강경 대응의 배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세우타에서 유럽 본토 스페인으로 진입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 북부로 들어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난관이다. 하지만 이 여정은 한니발이 이미 지나온 길이지 않나. 결국 대중의 상상은 멜로니 정부가 한니발의 노하우를 이미 알고 있고 그래서 '21세기 한니발'의 재현을 걱정하는 것 아니냐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게 아니라면 세우타 이주민을 이렇게 서둘러 통제할리가 없잖아.' 멜로니 정부를 겨냥한 비아냥으로 읽힐 만한 대목이었다.

    불법 이주민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다짐은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런데도 멜로니 정부의 '국경 통제'가 풍자 대상이 된 건 어떤 정치적 불순물이 섞였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는 스페인과 육상 국경을 맞댄 국가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탈리아가 '국경 통제'라는 이례적 조치를, 사태 발생과 거의 동시에 급하게 꺼내 든 것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한니발의 비밀이 밝혀졌다는 문장과 함께 게시된 정체불명의 유럽 지도는 사실상 조롱에 가까웠다. 지도에는 세우타·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가상의 이탈리아가 등장한다.
    대중이 생각하는 '정치적 불순물'은 최근 이탈리아 우파 내부의 균열과 관련이 있다. 멜로니 정부의 강경 대응은 최근 연정의 표를 잠식하는 극우 세력의 부상을 의식한 것이고 그래서 '정책'보다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는 의심이다.
    올해 3월 멜로니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사법개혁안 국민투표가 부결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선거제 개편안마저 연정 내 이탈표로 한차례 무산되면서 연정 내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극우 멜로니 정부를 압박하는 건 더 오른쪽으로 치우친 극우당 '국가의미래'다. 유럽 이민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자는 '재이주' 주장은 대중의 이목을 끄는 이들의 '시그니처' 정책이다. 멜로니 정부가 이들을 신경 쓰느라 세우타 사태 대응에 과몰입한 것 아니냐는 분석은 그래서 나왔다.
    이탈리아 일간 일폴리오는 최근 칼럼에서 멜로니 정부의 세우타 사태 대응을 언급하며 "착각하지 마라. 세우타는 우파 내부의 힘겨루기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극우파에 불법 이민 이슈를 선점당한 멜로니 정부가 유럽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 조약 중단이라는 회심의 한수로 반격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한니발은 극우파가 멜로니 정부에 더 센 대응을 요구하는 과정에서도 소환됐다.
    국가의미래 소속 에도아르도 지엘로 하원의원은 "국가의미래 대표였다면 군대로 알프스를 에워싸고 한니발처럼 대응했을 것"이라며 멜로니 정부의 세우타 대응이 너무 "제도적"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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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로코 국경을 넘은 수만명의 이주민 중 세우타에서 버티는 수천명을 제외한 상당수는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멜로니 정부의 우려대로 당장 이들이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집단 난입할 위험은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세우타 이주민의 대규모 유입 위험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솅겐 적용 중단 조치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스페인도 불과 열흘 만에 4천600명이 넘는 이탈리아발 제3국 국적자들을 검문하면서 맞서고 있다. '21세기 한니발'은 아직 알프스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 정도면 로마의 '한니발 트라우마'라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roc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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