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리, 야스쿠니 안갔지만 사실상 '원격 참배'…자민당 단체참배도 이례적
전몰자 추도사 역사 인식도 일보 후퇴…'반성'·'부전' 언급 없어
中견제 내세우며 안보에 몰두…전쟁 가해 '원죄' 지우기에 주변국 우려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 출범 뒤 첫 일본 패전일인 15일 다카이치 총리와 집권 자민당은 일제가 이웃 나라에 끼친 가해의 역사에서 눈을 돌리며 전보다 더 오른쪽으로 치우친 모습을 보였다.
다카이치 내각이 출범 이래 중국의 패권 확대를 비판하고 자국의 군사·경제 안전보장 확보에 목소리를 높이며 '강한 일본'의 재건을 바라는 일본 보수층의 지지를 호소해온 정책 기조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이날 다카이치 총리는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단 보류했지만, 총리가 아닌 자민당 총재 명의로 '다마구시'로 불리는 공물 대금을 사비로 봉납했다.
총리 취임 전까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주장해오던 그가 입장을 바꿔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 야스쿠니 신사 '예대제'(例大祭·제사) 참배를 건너뛴 행보의 연장선이다.
한국과 중국의 반발, 나아가 한일관계에 균열이 가는 것을 원치 않는 미국의 우려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됐다.
다만,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을 필두로 핵심 보직인 당 4역 가운데 3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단체로 참배하는 이례적 상황을 연출했다.
당초 당 4역 전원 참배를 검토했으나 최근 일본 수도권 지바현에 폭우가 내린 것을 고려해 고바야시 다카유키 정무조사회장은 단체 참배에서 빠졌다.
스즈키 간사장은 참배 뒤 기자단에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의 영령에 대한 평소 생각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 생각을 받들어 당 집행부를 대표하는 형태로 3명이 참배했다"며 단체 참배가 자민당을 공식 대변하는 형태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카이치 총리의 신념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결정임을 시사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자민당 간부들이 개인 자격 또는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자격 등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한 적은 있지만, 당 핵심 간부들이 단체로 참배에 나선 것은 일본 내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웃 국가들의 반발을 고려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보류하고 있는 다카이치 총리가 향후 이곳을 찾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서 자민당 핵심 간부들이 먼저 참배를 단행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가하기 직전 수백m 떨어진 신사를 향해 절을 올리는 '요배'를 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외교적 이유로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은 삼갔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필요하다는 지론을 우회적으로 행동에 옮기며 주요 지지층인 보수층에 어필하려 한 의도로 풀이된다.
과거 다카아치 총리는 초선 의원이던 1995년 국회에서 "나 자신은 전쟁 당사자라고 할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답하거나, 과거 일제가 일으킨 전쟁을 "일본의 자위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등 과거사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고수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총리 취임 후 처음 참석한 이날 전몰자 추도식 식사(式辭) 발언에도 이런 태도가 반영됐다. 강경 발언을 내놓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일제가 무모한 전쟁을 지속하는 것을 의회 정치가 견제하지 못했음을 지적한 이시바 시게루 전임 총리보다는 훨씬 후퇴한 입장을 추도사에 담은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정치적 스승'인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추도사에서 '반성'과 '부전(不戰·전쟁하지 않음)의 맹세'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베 전 총리 재집권 직후인 2013년 반성과 부전의 맹세 표현이 추도사에서 빠졌다가 지난해 이시바 전 총리가 13년 만에 재등장시킨 것을 이번에 다카이치 총리가 또다시 삭제했다.
2022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3년 만에 부활시켰던 '역사의 교훈'이라는 표현도 다카이치 총리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를 포함해 역대 총리가 써왔던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返さない) 않는다"는 표현을 "반복시키지(返させない) 않는다"로 바꿔 말해 그 의도에 시선이 집중됐다.
일본 근현대사 전문가인 야마다 아키라 메이지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다카이치 총리의 '반복시키지 않는다'라는 표현에는 "일본이 과거의 전쟁을 주체적으로 실시한 것이 아니라 휘말린 피해자라는 역사 인식이 나타나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우익 성향 산케이신문은 "일본이 다시는 전쟁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하는 것뿐 아니라 전 세계 안보 환경이 엄중해지는 가운데 억지력을 높여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일본이 최근 가장 큰 군사적 위협으로 지목하는 중국 등 외부 세력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를 사전에 막겠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인데, 여기에는 일본의 군사력 확대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일본은 전쟁 가해의 책임을 지고 전쟁과 무력행사의 영구 포기를 선언한 평화헌법을 둔 나라다. 따라서 일본의 향후 군사력 확대는 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한국과 중국 등 이웃 국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 정부는 이날 일본 정계의 야스쿠니 신사 공물 봉납과 참배를 비판하고, 특히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이 현직 방위상으로는 2년 만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관계자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
아사히신문은 방위성의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자위대원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금지되는 상황에서 고이즈미 방위상의 참배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과의 최근 양호한 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일본을 '신형 군국주의'라고 비난하는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cs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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