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지하면서' 대신 '견지하고 있고'…미래 의지 없이 현재 상황만 설명
핵무기금지조약 재검토 회의 옵저버 참가 여부도 확답 피해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추도식에서 '비핵 3원칙'의 향후 유지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은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산 데 이어 9일 열린 나가사키 추도식에서도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보유하지도, 제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으로 사실상 일본의 '국시'(國是)로 간주돼 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 81년을 맞아 이날 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 열린 '원폭 전몰자 위령식·평화기원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일본이 비핵 3원칙을 견지하고 있고(堅持しており) 나가사키를 마지막 피폭지로 한다는 다짐 아래 핵무기 없는 세계의 실현을 향한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사흘 전 히로시마 추도식에 이어 이날도 언급한 '견지하고 있고'라는 표현은 이전 총리들이 같은 기념식에서 썼던 '견지하면서(堅持しながら·しつつ)'라는 표현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야당 등에서 비판한 바 있다.
앞선 총리들의 표현은 비핵 3원칙을 계속 유지한다는 미래 지향성 의지가 보다 분명하게 읽히는 반면, 다카이치 총리의 표현은 현재의 정책 상태를 설명하는 데 그친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교도통신은 다카이치 총리가 나가사키 추도식 인사말에서도 비핵 3원칙을 견지한다는 현상에 관한 설명만 하는 데 그쳤다며 이 원칙의 재검토를 지론으로 삼는 총리의 의향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설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맡았던 2022년 비핵 3원칙 중 하나인 '반입하지 않는다'와 관련해 "유사시에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며 "위기 상황에서 핵을 탑재한 미국의 함정이 기항도 못 하지 않느냐"고 말한 바 있다.
교도는 일본 정부가 올해 안으로 개정을 추진 중인 3대 안보 문서에 비핵 3원칙 재검토에 관한 내용이 담길지 쟁점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추도식 참석에 이어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 11월 열리는 핵무기금지조약(TPNW) 재검토 회의에 옵저버로 참석할지를 묻는 말에 "일본의 안보 확보와 핵군축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무엇이 진정으로 효과적인지라는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그는 다만 핵무기금지조약 자체에 대해 "핵무기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출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조약"이라고 말했다.
다만 교도통신은 핵무기 보유국이 이 조약에 참여할 가능성이 없으며 해당 조약을 토대로 핵군축을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고 해설했다.
일본은 원폭의 참상과 핵무기 사용 위험성을 강조하면서도 동맹국인 미국의 '핵우산'을 고려해 핵무기 사용·개발 등을 금지한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관련해서는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이 모두 참여하는 NPT 체제 아래서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한편, 스즈키 시로 나가사키시 시장은 이날 추도식에서 핵무기는 절대악이라며 일본 정부가 비핵 3원칙을 견지하고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안보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 최근 국제사회에서 핵전쟁의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1945년 이날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한 오전 11시 2분에 맞춰 묵념이 거행됐다.
추도식에는 98개국과 유럽연합(EU) 등 대표단이 참석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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