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밀반입·횡령 혐의 등으로 수사받던 차베스·마두로 정권 이인자
마두로 축출 후 미국에 밀착…'미국인들에게 유용한 존재 되고파' 변신
델시·호르헤 남매와 '삼두정치'…필요에 의한 동맹체제로 균열 가능성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미국 정부는 그의 머리에 2천500만달러(370억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연방 검찰은 그가 수 톤(t)의 코카인을 밀반입했다면서 기소했다. 재무부는 횡령 혐의로 그에게 제재를 부과했다.
하지만 미국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달 열린 어느 공식 행사에서 그의 손을 맞잡고 어깨를 두드렸다. 다음날에는 미국 장성들이 그와 마주 앉아 함께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 정도면 '적과의 동침'이라 비판해도 미국으로선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미국이 실질적으로 베네수엘라를 장악하면 제거되리라 예상됐던 장본인. 그러나 숱한 역경 속에서도 여전히 권력의 자리를 맴돌고 있는 인물, 디오스다도 카베요 베네수엘라 내무장관 얘기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거액이 목에 걸린 현상금 수배자이자 미국의 '키 파트너'인 카베요 장관을 집중 조명했다.
카베요는 애초 우고 차베스(1954~2013)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다. 베네수엘라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동문 선배인 차베스 밑에서 청춘을 보냈다. 미수에 그친 1992년 쿠데타 때도 몸을 던져 차베스를 지켰다.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비서실장과 부통령으로서 그를 보좌했다.
장관과 주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차베스의 공인된 후계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정권 막판 차베스의 뜻이 노동 운동가 출신이자 외교장관을 지낸 사회주의 이론가 니콜라스 마두로에게 기울자 별다른 반발 없이 '보스의 뜻'에 순종했다.
그런 덕인지 마두로 시절에도 정권 이인자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지위는 더욱 강화했다. 과거 차베스 시절 국방장관을 지내며 군부를 장악했던 그는 마두로 정권에서도 제헌국회 의장, 내무장관 등을 역임하며 군권과 당권, 경찰권을 틀어쥐었다. '포스트 마두로' 자리는 당연히 그의 몫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 1월 3일 미국에 의해 마두로가 축출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작전' 실행 이전에는 미국이 '마약 밀매 조직의 최종 보스'로 간주하던 카베요를 마두로와 함께 처단하거나 체포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이번에도 예상을 비켜 갔다. 그는 자리를 온존했다.
카베요는 차베스에게 순종했듯, 미국에도 순종했다. 과거 격렬한 반미주의자였던 그는 마두로 실각 후 자신의 수사를 극적으로 바꾸고 대외 이미지 변신에도 나섰다. 주변 인물들은 이런 변화가 '미국인들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어, 조국의 새로운 국면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맡겠다'는 최우선 목표 때문이라고 NYT에 전했다.
카베요는 워싱턴에 대한 비난을 멈췄고, 평소 자주 입던 빨간색 티셔츠도, 그가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준군사조직 '콜렉티보스'의 복장도 벗어 던졌다. 이제 그는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는다.

군경과 대중 시위를 통제하는 콜렉티보스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 덕에 그는 현재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대통령,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 남매와 함께 '삼두정치'를 이루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삼두정치'는 자주 파국을 맞았다. 로마 시절 제1차 삼두정치는 크라수스·폼페이우스·카이사르 사이의 경쟁 끝에 카이사르의 독재로 귀결됐고, 카이사르 암살 후 벌어진 레피두스·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의 제2차 삼두정치 역시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로 공화정이 끝나고 제정이 시작됐다. 권력은 속성상 결국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어서 일인자에 승복하지 않는 이인자는 살아남기 어렵다.

현재 삼두정치 체제 안에서 카베요는 로드리게스 남매에게 유용한 파트너임을 증명해 냈다. 미국의 압박 속에서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 덕분에, 이들 남매와 카베요 사이에 오랜 기간 이어져 온 해묵은 라이벌 관계는 일단 뒤로 밀려난 상태다. 그러나 정부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은 이것이 결코 '상호 신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NYT에 귀띔했다.
실제 권력 구도에서 약간의 균열상도 감지되고 있다. 로드리게스 임시대통령은 지난 7일 인사에서 18년간 국세청장 자리를 꿰차며 정권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카베요 장관의 동생 호세 다비드 카베요를 석유화학공사의 새 수장으로 임명했다. 지진 복구 재원 마련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경질 인사에 가깝다. 일각에선 로드리게스가 카베요 힘 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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