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교리성 장관, 유럽 외교정책 일관성 부족 지적

(브뤼셀=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국제법을 선별 적용하면서 전쟁에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이 교황청에서 나왔다.
28일(현지시간)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은 지난 26일 개막한 교황청 비공개 추기경 회의에서 국제 사회가 보편적인 기준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도덕적·법적 원칙을 적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면서 외교정책에 있어 유럽의 일관성 부족을 지적했다.
아르헨티나 출신 추기경인 페르난데스 장관은 이 자리에서 "특정 국가가 적국이면 민주주의가 미흡하다고 비난하며 여러 방식으로 제재를 가하지만, 동맹국이라면 표현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가 결여됐더라도 외면하는 게 (국제사회의)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페르난데스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 국가에는 경제 제재를 가하고, 또 다른 나라에는 재정과 무기를 지원하지만, 더 심각한 침공과 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또 다른 사례에는 동일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며 EU도 직격했다.
이런 발언은 러시아에 맞서 5년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침공국인 러시아는 제재하고 있는 EU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 등에서는 같은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으로 읽힌다.
페르난데스 장관은 "이런 모순은 결국 실제로는 세계 각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우선시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진실과 가치에 대한 실질적이고 안정적인 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울러 러시아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정당방위' 개념을 과도히 확대 해석해 우크라이나부터 중동에 이르는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면서 '정당한 전쟁'에 관한 가톨릭 교리가 전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가장 부당한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고도 개탄했다.
페르난데스 장관은 이를 막으려면 각국이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점점 더 자주 내세우는 광범위한 '예방적 전쟁' 논리를 배격하고, 정당한 자위권의 근거를 "가장 엄격한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리티코는 페르난데스 장관의 이런 입장은 '정당한 전쟁'에 관한 가톨릭 교리를 둘러싼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레오 14세 교황 간 이견을 더 깊어지게 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배타적 이민정책과 소수자들에 대한 관용 부족에 쓴소리해온 레오 14세 교황은 중동 전쟁을 계기로 미국에 직설적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톨릭 신자인 밴스 부통령은 더 큰 악과 불의를 막기 위한 제한적인 무력 사용의 조건을 체계화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정당한 전쟁론'을 근거로 이란을 상대로 한 미국의 군사 행동이 정당하다고 반박하며 교황과 대립해 왔다.

한편 레오 14세 교황은 27일 추기경회의 폐회 연설을 통해 현대 분쟁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점에 비춰 정당 방위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추기경들의 의견을 환영한다며 "필요한 신학적·사목적 엄밀성을 가지고" 이 문제를 다뤄나갈 것임을 천명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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