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음성인식, 전기차 제조 자동화, 자율주행 전기차 충전기 등 눈길
"中, 전시상황처럼 모든 자원 기술자립에 투입"…'일자리 대체' 현실화 우려도

(난징·허페이=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중국에는 'AI 버스에 올라타자'(抱AI大腿)라는 인터넷 유행어가 있다.
원래 '바오다투이'(抱大腿)는 권력자나 잘나가는 사람에게 붙어 이익을 취하거나 도움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AI가 중국 내 산업 지형을 워낙 거세게 바꾸다 보니 이런 말까지 생겼다.
주한 중국대사관의 초청으로 지난 9∼13일 둘러본 중국 동부 장쑤성 난징과 안후이성 허페이의 기업들은 AI가 어떻게 산업에 적용되거나 상용화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들이었다.
중국 기업들은 자체 기술 고도화는 물론 이종 산업과 융합을 통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공고히 다지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기업이 허페이에 있는 AI 음성인식 기술 기업 아이플라이텍이다.
이 회사의 실시간 음성 녹음, 텍스트 변환, AI 요약 기능을 갖춘 스마트 전자잉크(E-Ink) 태블릿 'AI 노트'는 회의가 잦은 한국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10개 음성언어에 대한 실시간 번역과 83개 언어의 필기체 인식 등이 강점이다.
투명 스크린 통역기와 AI 번역 안경, 교사의 필기 스타일을 인식하고 판서 내용을 디지털 콘텐츠로 변환하는 '스마트 칠판' 같은 실생활 및 사무용 기기를 넘어 음성 인식 차량 제어 시스템, 수많은 마이크로 미세한 이상 소음을 감지해 결함 위치를 찾는 음향 감지기 등 산업용으로까지 AI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판매가가 약 4천200위안(약 94만원)이라는 AI 번역 안경을 직접 써보니 눈 위로 대화 내용의 파란색 자막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1999년 중국과학기술대학(USTC)의 언어통신실험실에서 시작된 아이플라이텍은 중국의 대표적인 성공적 대학 연계 창업 모델이자 산학협력 사례로 꼽힌다.
청천 아이플라이텍 AI 번역 부문 총경리는 "중국어-영어 번역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엔비디아 칩 없이) 화웨이 AI 칩만으로 구동되는 대형언어모델(LLM)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허페이의 전기차 업체 니오의 F2공장은 900여대의 로봇을 투입해 1분에 차량 1대를 제조해내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현했다.

공장에서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용접 로봇이 쉴 새 없이 작업하고, 운반 로봇은 바쁘게 물건을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품질 검사를 마친 차량은 사람의 개입 없이 무인운전 시스템을 통해 지정 구역으로 이동했다.
한 작업자의 손에는 커다란 권총 모양의 기구가 들려있었는데, 차체 쪽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하자를 자동으로 찾아낼 수 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니오는 또 자체 개발한 스마트 운영체제 스카이 OS(Sky OS) 덕분에 2014년 설립 이래 재고 '제로'(0)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공장 지하에는 하루 1.5테라바이트(TB·1TB는 1천24기가바이트) 분량의 전 공정 자료를 수집하는 데이터 센터가 구축돼 있다"며 "향후 의사결정까지 자동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글로벌 배터리 기업 고션하이테크는 전기차의 배터리가 방전되는 긴급 상황 시 앱 호출을 받으면 자율주행으로 이동해 최대 8대를 완전히 충전할 수 있는 이동형 충전기를 개발했다.

전통 미디어의 위기 속에 중국의 대형 미디어 그룹들도 AI 기술을 전방위적으로 도입해 전화위복에 나섰다.
난징의 장쑤방송공사(JSBC)는 난징대를 비롯해 60여 개 대학과 산학협력을 맺고 AI 소프트웨어를 고도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인 인터뷰이(Interviewee)의 중국어 답변을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입 모양까지 정교하게 영어 등 다른 언어로 바꿔주는 기능이 눈길을 끌었다.
중국 내 혁신을 주제로 한 첫 종합 전시공간인 허페이혁신관에는 코끼리 코의 복잡한 움직임을 정밀하게 따라 하는 로봇 팔을 비롯해 인공태양 핵융합 기술과 양자 기술 등 2천600여건의 혁신적 성과물이 대거 전시돼 있다.
중국 기업들의 AI 핵심 기술이 축적되는 가운데, 일부 중국 기업이 당초 한국 취재진의 취재를 허용했다가 말을 바꿔 불허하거나 현장에서 사진 촬영을 제지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AI를 비롯한 중국의 '기술 굴기'는 미국의 강력한 견제가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를 자극하면서 본격화했다. 중국 현지에서는 자립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 허페이시는 니오가 '트럼프 1기' 때 미국의 대중국 고율 관세 여파로 위기에 처하자 대규모 자금 조달을 통해 살려냈다.
앞서 액정 패널 기업 BOE 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사회생시켜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 전략인 '허페이 모델'을 정립했다.
지방 정부가 사실상 벤처캐피털로 나서는 이런 모델의 성공 덕분에 허페이는 중국 내에서 가장 활력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허페이시 한 고위 관료는 "기업들의 사업 방향을 강제로 통제하거나 좌우하지 않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원과 비즈니스 공간을 제공하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에 집중했다"고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그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AI를 도구로 삼아 생산성을 높이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준 전 성균관대 교수 등은 최근 발간한 저서 '테크노 스테이트 차이나'에서 "미국의 전례 없는 제재와 공급망 압박 속에서도 중국 정부는 마치 전시 상황처럼 국가의 모든 자원을 기술 자립에 쏟아붓고 있다"고 짚었다.

난징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요즘 중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촨젠궈'(川建國)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귀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식 성씨인 '촨푸'(川普)와 국가를 건설한다는 뜻의 건국을 합친 말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상은 중국의 부상을 돕는 '건국 영웅'처럼 보인다고 비꼬는 말이다.
그러나 AI의 급속한 발전은 높은 청년 실업률에 허덕이는 중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드리우고 있다. 인력이 AI와 로봇 기술로 대체되는 현장을 목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난징시의 한 기업 관계자는 "생산 공정을 자동화해 과거 수백 명이 근무했던 현장 생산 인력을 약 20명 수준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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