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파시냔 총리 승리 환영 "아르메니아, 유럽 미래 택했다"
러 "야당 핍박 속 치러진 선거, EU 가입은 막다른 길" 주장

(브뤼셀·이스탄불=연합뉴스) 현윤경 김동호 특파원 = 러시아의 전방위 압박 속에서 치러진 아르메니아 총선에서 친서방 성향의 집권당 시민계약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했지만 과반 득표에는 실패했다.
8일(현지시간) 아르멘프레스, 로이터 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중앙선거위원회는 전날 치러진 총선의 개표를 모두 마친 결과 시민계약당이 득표율 49.8%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1년 총선 때 54.0%보다 낮아진 수치다.
강한아르메니아당은 23.3%를, 아르메니아당은 9.9%를, 번영하는마르메니아당은 4.0%를 각각 얻었다. 친러시아 성향인 이들 3개 주요 야당이 모두 합쳐 37%대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시민계약당 견제에 힘을 얻었다.
다만 번영하는아르메니아당은 의회 진출에 필요한 4.0% 득표에 다소 모자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친서방 행보를 보이는 시민계약당 소속 니콜 파시냔 총리를 지지했다. 유럽연합(EU)도 EU 가입을 추진하는 파시냔 총리를 위해 아르메니아에 대한 5천만 유로(약 890억원)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준비한다고 밝히는 등 지원사격을 했다.
반면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산 꽃과 생수, 와인, 브랜디, 토마토, 오이 등의 품목에 수입 제한을 걸고 가스 공급 중단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파시냔 총리를 압박했다.
이번 선거에서 3연임에 도전한 파시냔 총리는 이날 새벽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선언했다.
이어 "아르메니아 국민은 역내 번영과 협력을 위해 투표했다"며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아제르바이잔과의 영토 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필요한 개헌 정족수인 의석 3분의 2를 확보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양국의 영토 분쟁은 2023년 9월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계 분리주의 세력을 대대적으로 공습하면서 격화했다가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한 평화 선언 서명으로 잦아든 상태다.
나고르노-카라바흐(아르메니아명 아르차흐) 지역에서 아르메니아계 주민을 몰아낸 아제르바이잔은 최종 평화협정 조건으로 아르메니아 헌법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 영토 관련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캅카스산맥 고원지대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땅이지만 아르메니아계 분리주의 세력이 점유하면서 화약고가 됐다.
지난해 러시아계 사업가 삼벨 카라페탼이 창당한 강한아르메니아당이 총선 결과 제2당 지위를 확보하면서 파시냔 총리의 EU 가입 추진 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카라페탼 대표는 쿠데타 모의 혐의로 지난해부터 가택 연금 상태다.
EU는 일단 이번 선거 결과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8일 소셜미디어에 파시냔 총리에게 축하를 전하면서 "우리는 유럽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 아르메니아와의 협력을 매우 가치 있게 생각한다. 아르메니아는 우리를 믿어도 된다"고 말해 아르메니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EU는 지난달 초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사상 최초로 아르메니아와 정상회의를 열고 양측의 협력 수준을 격상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도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아르메니아 유권자들이 러시아의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미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좋은 일"이라고 반겼다. 또 "물론 우리 역시 그들의 미래 개혁을 돕기 위해 가능한 많은 지원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여당의 승리를 평가절하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아르메니아 총선이 야당에 대한 전례없는 압박과 서방, 특히 EU의 개입 속에 치러졌다"며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지도부의 실제 조치를 고려해 향후 관계에 대한 입장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승리를 주장하는 시민계약당은 독자적인 정부를 확보하지 못했고, 지지율마저 지난 선거보다 크게 하락했다"며 "아르메니아에서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진보적 발전과 유라시아 통합 구조 지속에 대한 요구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옛 소련 국가 경제공동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러시아 중심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등 러시아가 주도하는 질서에 밀착하고자 하는 아르메니아 야권에 정치 탄압이 집중됐다고 주장하며 "EU 가입은 막다른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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