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결없이 폐막…최종안서 北비핵화 문구 통삭제, 韓 "깊은 유감"
핵군축 검증 의무 놓고 핵보유국 반발…NPT 체제 권위 흔들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11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가 주요 현안에 대한 회원국들의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합의문을 채택하는 데 또 실패했다.
NPT 평가회의는 22일(현지시간) 지난 4주간 일정을 마치고 NPT 체제 강화를 위한 합의문을 채택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이란 등 지역 핵 문제와 핵군축 의무 이행을 둘러싼 대립 속에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로써 NPT 평가회의는 2015년, 2022년에 이어 3회 연속 최종 합의문 채택이 무산됐다. 이에 따라 NPT 체제의 권위와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의 의장을 맡은 도 흥 비엣 베트남 주유엔 대사는 이날 저녁 "각국 대표단 발언을 청취한 결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해당 결정(합의문)은 채택되지 않았다"고 공식 발표한 뒤 폐회를 선언했다.
이번 회의는 미·이란 전쟁 등으로 국제사회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개막 전부터 난항이 예상됐다. 비엣 의장은 협상 속도를 높이기 위해 비교적 이른 시기에 회의 2주 차에 최초 초안을 마련, 집중 협의에 들어갔다.
이후 4차 수정본까지 마련, 이날 0시를 넘겨 각국 대표단에 송부되는 등 치열한 협상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수위가 낮더라도 일단 합의문 자체는 채택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각국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막판 최대 쟁점 중 하나는 NPT 핵보유국의 원칙적 군축 의무를 규정한 제6조를 토대로 보다 구체적인 이행·투명성 검증 의무를 담으려 한 '제15항'이었다. 이에 핵보유국들이 반발하면서 협상 타결의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나카미츠 이즈미 유엔 군축고위대표는 회의 종료 후 언론 브리핑에서 "핵보유국들이 제6조에 따른 군축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비보유국들에만 비확산 의무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3회 연속 합의 실패는 국제사회 전체가 뼈저리게 되새겨야 할 심각한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막판 타결을 위해 합의문 초안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 표명이나 한반도 비핵화 관련 언급도 모두 삭제됐다.
북핵 관련 문구는 2차, 3차 수정본을 거치며 두 단락에서 한 단락으로 줄더니, 4차 수정본에서 아예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연장 없이 만료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유일한 핵 군축 협정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의 후속 협상 개시를 촉구하는 내용도 최종안에서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김상진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단 한 줄의 간단한 메시지조차 담아내지 못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그러한 메시지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재확인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차석대사는 또 "북한이 NPT 체제하에서 결코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과 이 문제를 협상과 외교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명시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비엣 의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북핵 언급이 완전히 삭제된 것이 잘못된 메시지를 주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북핵 문제는 단 한 줄로 요약하기엔 극도로 복잡한 사안"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전체 문서 분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NPT의 3대 핵심축(군축·비확산·평화적 이용)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 등 특정 지역 이슈를 과감히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비엣 의장은 합의에 이란 등 특정 국가의 반대가 있었냐는 물음에는 "어떤 안을 제시해도 A 또는 B 국가가 채택을 거부할 것이 자명한 상황이었다"며 "이미 합의가 부재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표결에 부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결렬에 대해 "세상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 이 중요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에 대해 실망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NPT 체제에 대한 재앙과도 같은 일"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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