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당일 기자회견 없이 사실상 '빈손'…달라진 위상에 협상 애먹었나
시진핑, '중미 건설적 전략안정 관계' 제시하고 거침없는 '대만 경고장'도
이란 문제 中협조 필요한 트럼프, 대만 문제 '무반응'…SNS도 자제
전문가 "미국으로서도 일방적 승리 거두기 어려워져…시진핑 체제 강화"

(베이징·서울=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신유리 기자 = 14일 베이징에서 성사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은 '세기의 담판'이 되리라는 세간의 기대를 비껴가는 분위기다.
무역 협상, 이란 전쟁, 대만 문제 등 복잡한 국제 정세가 산적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9년 전과 달리 공동 기자회견도 열지 않은 채 각자 짤막한 보도자료를 뿌리는 것으로 결과 발표를 대신했다.
전 세계 이목이 쏠린 글로벌 최대 양자 외교 무대에 오른 양 정상은 "훌륭하다",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표면상 우호적 기류를 연출했음에도, 회담 당일이 저물 때까지도 별다른 합의 결과를 내놓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풀기 어려운 난제들이 산적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지만, 이는 '트럼프 1기'였던 지난 2017년 11월 베이징 미중정상회담 때와는 달라진 두 리더의 위상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시 주석의 '선물 보따리'를 잔뜩 받아들었던 9년 전과 비교해 미국과 세계 패권을 양분하는 '빅2'로 올라서려는 중국의 달라진 태도에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난항을 겪었을 수 있다.
특히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외 입지가 좁아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에서 열쇠를 쥔 시 주석에게서 주도권을 찾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처럼 뒤바뀐 두 정상의 처지와 중국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회담장 안팎에서 여러 차례 속출했다.
시 주석이 회담에서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 구축을 중미 관계의 새로운 지위로 삼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날 시 주석이 처음 꺼내든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란 평화공존과 갈등 관리 등 중국의 기존 대미 외교 노선에 더해,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의지를 명확하게 투영한 개념으로 풀이된다.

회담 모두발언에서 시 주석이 패권 경쟁에 따른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다가왔다.
특히 미중 회담의 최대 현안이자 갈등 지점인 대만 문제를 놓고 시 주석이 발언 수위를 이례적으로 끌어올린 것도 상징적인 대목이다.
그는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잘 처리하면 (미중) 양국 관계는 총체적인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부딪치거나(?撞) 심지어 충돌(衝突)할 것이고, 중미 관계 전체를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며 사실상 '경고장'을 꺼낸 것이란 해석을 낳았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후 산책 도중 취재진으로부터 '대만 문제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평소와 달리 답변을 피한 것은 시 주석의 공세적인 태도와 상반된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에서도 대만 안건에 '무반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익명을 요구한 한 백악관 당국자를 인용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과 관련한 시 주석의 언급에 반응하지 않았으며, 이를 인지하지 않은 상태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WP는 그러면서 "세상은 그사이에 멈춰 서 있지 않았다. 중국은 당시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고 진단하고, "두 정상은 회담에 앞서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싶어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고 그 배경을 풀이했다.
또 양측 발표문에서 무역 협상을 놓고서도 접점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줄 만한 구체적 진전이 담기지 않은 채 '협력' 또는 '지지' 등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한 것 역시 9년 전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맞춰 2천50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200조원)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으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 오르기 전 트루스소셜을 통해 중국에 "개방을 요구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현재까지 사뭇 다른 상황이 연출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관심이 집중됐던 중동 긴장,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 등의 글로벌 현안에 대해서도 별다른 논의 결과를 내놓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에너지 수입 등에 관해 중국의 원칙적 합의를 끌어낸 것이 방중 2일차의 거의 유일한 성과로 꼽힌다.
중국 정치와 미중 관계 전문가인 이희옥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이날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농산품 등 중국의 '쇼핑 리스트'가 필요했고, 중국은 관세 문제와 레거시 기술 등 영역에서 어느 정도 양보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면서 "양국이 긴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에서 이익의 균형을 찾으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관세와 희토류를 교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작년 부산 정상회담 휴전의 결과인데, 이런 새로운 질서는 깨지기 어려운 구조로 미국으로서도 일방적 승리를 거두기 어렵게 됐다"며 "중국은 미국이 중국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낸 것이고, 이는 시진핑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당국자였던 줄리안 게워츠는 WP에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하는 'TV용 볼거리'를 제공했다"면서 "이를 통해 경제 긴장 고조를 늦추고, 중국의 힘을 키우려는 시간을 벌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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