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구팀 "'비만은 유행병' 시각에 도전…국가별 맞춤형 공중보건 정책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세계적으로 비만이 증가하고 있지만 고소득 국가에서는 증가세가 둔화하거나 일부 감소 조짐까지 보이는 반면 저소득·중간 소득 국가에서는 여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마지드 에자티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14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서 1980~2024년 200개 국가·지역 2억3천200만명의 체질량지수(BMI) 데이터를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결과는 대부분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는 고소득 국가와 달리 비만이 계속 증가하고, 일부는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비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별 상황에 맞는 맞춤형 공중보건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는 전 세계 1천900여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국제 연구 네트워크 'NCD 위험 요인 협력연구단(NCD Risk Factor Collaboration)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전 세계 5~19세 7천만명과 20세 이상 1억6천200만명 등 2억3천200만명의 키·몸무게 데이터를 이용해 1980~2024년 국가별로 비만 유병률이 어떻게 변했는지 조사했다.
비만은 성인의 경우 BMI 30㎏/㎡ 이상, 어린이·청소년은 세계보건기구(WHO) 성장 기준 중앙값보다 BMI가 표준편차(SD) 2 이상 높은 경우로 정의했다. 특히 연구팀은 단순 비만 유병률뿐 아니라 연간 비만 유병률 변화량인 '비만 증가 속도(velocity of obesity)'를 핵심 지표로 사용해 국가별 추세 변화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거의 모든 국가에서 비만 유병률이 증가했지만, 증가 양상은 국가·연령·성별에 따라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유럽·북미·오스트랄라시아 등 고소득 국가에서는 20세기 말까지 비만이 빠르게 증가했으나 이후 증가세가 둔화하거나 정체됐다. 특히 어린이·청소년에서 먼저 증가세 둔화가 나타났고, 약 10년 뒤 성인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관찰됐다.
가장 먼저 비만 증가세가 둔화한 나라는 1990년께 덴마크였으며, 이후 아이슬란드·스위스·벨기에·독일 등 유럽 국가들로 확산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대부분 고소득 국가에서 학령기 아동·청소년 비만 증가세가 안정화됐고 일부 국가에서는 감소 조짐도 나타났다.
고소득 국가에서도 비만이 정체된 수준은 국가마다 달랐다. 서유럽에서는 성인 비만 유병률이 11~23%, 어린이·청소년은 4~15% 수준에서 안정화됐지만, 미국 등 영어권 고소득 국가는 성인 25~43%, 어린이·청소년 7~23%까지 상승한 뒤 정체됐다.
반면,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는 비만 증가세가 여전히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루마니아와 체코 등 중앙유럽 일부 국가와 브라질 등 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성인 비만 유병률이 30~40%에 달했다.
또 동남아시아에서는 동티모르·베트남은 유병률이 2~3% 수준인 반면 태국·브루나이는 20~40%에 이르는 등 같은 지역 안에서도 큰 차이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차이는 단순히 경제 수준이나 도시화 정도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며 음식 가격과 접근성, 교육 수준, 문화와 사회 규범, 학교 급식·체육 프로그램 같은 제도적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소득 국가에서는 건강 정보 제공과 운동 권장 정책 확대로 일부 계층의 비만 증가세가 둔화했지만, 건강 식품 접근성과 가격 부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오히려 커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반대로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는 경제 성장과 식품 상업화, 교통·노동의 기계화로 영양 상태와 신장은 개선됐지만, 건강한 식품의 이용 가능성과 가격 부담 문제 등으로 비만 증가가 이어지고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어 최근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 비만 치료제는 아직 이번 연구에서 관찰된 장기 추세를 설명할 정도의 영향은 보이지 않았지만 앞으로 접근성과 가격 문제가 개선되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에자티 교수는 "비만 추세가 국가·연령대·성별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이 결과는 비만을 전 세계적 유행병(epidemic)으로 보는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면서 "비만 증가 추세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 아니며 정책 개입을 통해 멈추거나 되돌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출처 : Nature, Majid Ezzati et al., 'Obesity rise plateaus in developed nations and accelerates in developing nations',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6-10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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