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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었던 프랑스-알제리, 해빙 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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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었던 프랑스-알제리, 해빙 기류
    작년 외교관 맞추방…주알제리 佛대사 업무 복귀
    佛국방차관, 알제리 세티프 학살 추모식에도 참석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지난해 갈등으로 상대국의 외교관 추방 단계까지 갔던 프랑스와 알제리 간 관계가 회복 기미를 보인다.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은 8일(현지시간) 성명에서 1년 넘게 자리를 비운 스테판 로마테 주알제리 프랑스 대사가 이날부터 현지 업무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엘리제궁은 아울러 알리스 루포 국방 차관이 이날 알제리 세티프를 찾아 1945년 5월 8일 현지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을 추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1945년 5월 8일은 나치 독일이 프랑스 등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하며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다.
    같은 날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세티프 등에선 알제리인들이 연합군의 승리를 축하함과 동시에 알제리의 독립을 요구하는 평화 행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 알제리 청년이 당시 금지돼 있던 알제리 국기를 들었다가 프랑스 경찰과 실랑이 끝에 사살됐다.
    이를 본 알제리인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프랑스군은 유혈 진압에 나섰다.
    프랑스 르피가로에 따르면 역사학자들은 그해 6월까지 이어진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을 1만5천∼2만명으로 추산한다.
    이 사건은 9년 뒤인 1954년 알제리 독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
    엘리제궁은 "프랑스 국민들이 해방을 축하하던 바로 그 시기에 세티프, 겔마, 케라타 등지에서 시위에 대한 탄압은 수 주간 지속됐고 수천 명의 희생자를 냈다"면서 "이것이 우리 역사의 진실이며 이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이 프랑스의 명예"라고 밝혔다.
    이어 "프랑스가 역사를 바라보는 이런 냉철한 시각은 오늘날 프랑스 국민과 알제리 국민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향한 신뢰와 희망이 담긴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식민 역사로 묶인 두 나라는 2024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서사하라 영유권을 둘러싼 알제리와 모로코 간 갈등에서 사실상 모로코 편을 들며 위기가 고조됐다.
    이후 양국은 프랑스 내 불법 체류 알제리인의 추방 문제, 알제리 당국의 프랑스-알제리계 작가 구금 등의 문제로 계속 충돌했다.
    지난해 4월엔 상대국 외교관들을 서로 추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고, 이 맥락에서 프랑스는 주알제리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며 양국 간 관계가 극에 치달았다.
    그러나 올해 2월 로랑 누네즈 내무 장관의 알제리 방문을 기점으로 양국에 해빙 기류가 감돌기 시작했다.
    사헬(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테러 대응 및 정보 공유라는 안보 문제와 경제적 이해관계 등 현실적 이유가 양국 간 관계 개선을 가져온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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