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 수업 거부하고 거리로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나치 패망일인 8일(현지시간) 독일 전역에서 징병제 부활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지난해 연말 징병제로 전환을 염두에 둔 새 병역법을 만든 이후 전국 단위 학생 파업은 이번이 세 번째다.
rbb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독일 120여개 도시에서 징병제 반대 시위가 열렸다. 베를린에서만 약 2천명이 수업을 빼먹고 거리로 나섰다. 지난 3월 시위에는 전국에서 약 5만5천명이 참가한 걸로 집계됐다.
주최 측은 1945년 나치가 연합군에 조건 없이 항복한 이날을 세 번째 파업 투쟁 날짜로 잡고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의 재무장을 규탄했다. 작년 12월부터 집회를 조직하는 학생단체 '병역의무 반대 학교파업'은 "전쟁 준비를 위한 탱크와 폭탄, 기반 시설에 연방정부 예산의 거의 절반이 쓰이고 있다"며 "독일 전역 거리에 '부자들은 전쟁을, 청년들은 미래를 원한다'는 메시지가 울려퍼질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1월 시행된 새 병역법은 당국이 18세 남녀에게 군복무 의사와 능력 등을 묻는 온라인 설문을 보내고 남성은 반드시 답변하도록 했다. 내년부터는 18세 남성 전부 징집을 전제로 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군대에 가겠다는 지원자가 부족할 경우 의회 의결을 거쳐 징병제를 도입할 수 있다.

당국은 급진 좌파 세력이 학생 파업을 비롯한 병역의무 반대 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날 시위를 앞두고 국내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 요원에게 미행당했다는 학생들 주장이 잇따랐다.
지난 3월 집회에서도 학교 측이 집회 전단지를 수색하려고 학생들 가방을 뒤졌다거나 경찰이 집회에 나선 학생들을 차량에 태워 학교로 되돌려보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찰은 당시 집회에서 '메르츠, 동부전선에서 너 혼자 죽어라' 등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를 겨냥한 팻말을 든 참가자들을 체포하고 정치인 모욕 혐의로 수사 중이다.
새 병역법이 징집 가능성을 열어둔 탓에 의사와 무관하게 군대에 끌려갈 수도 있는 청년층 반발이 작지 않다. 국방부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설문지를 받은 18세 남성의 28%가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고의로 답변을 거부하면 과태료 250유로(43만원)를 물게 돼 있다.
일간 베를리너차이퉁은 "연방군이 Z세대를 두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과태료 위협에도 모병이 순조롭지 않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행정서류로만 다뤄온 세대 간 문제를 이번 파업이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새 안보 체제에서 누가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지, 누구에게 의견을 구해야 하는지의 문제"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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