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화 서울대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선임연구원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최근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의 한국 방문은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마하마 대통령에게 롯데웰푸드의 '가나 초콜릿'을 특별제작해 선물한 것이다. 가나산 초콜릿을 선물로 건넨 이 장면은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 원자재 생산국과 소비국이라는 기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코코아 생산국인 가나는 오랫동안 글로벌 공급 기지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부가가치와 산업화, 그리고 좀 더 공정한 경제 질서 속에서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초콜릿은 곧 가나가 처해온 구조와 그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러한 상징은 최근 한국계 1.5세가 주한 가나 대사로 임명되며 한국 외교의 지평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는 국가 간 협력을 넘어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관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한국과 아프리카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정치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나는 1957년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의 지도 아래 독립했다. 이후 탈식민주의와 범아프리카주의의 중심에 섰다. 은크루마는 자정을 기해 발표한 독립 연설에서 "가나는 자유"라고 선언했다. 그는 식민 지배의 종식을 알리는 동시에, 전체 아프리카의 해방 없이는 진정한 독립이 완성될 수 없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구상은 1963년 현 아프리카연합(AU)의 전신인 아프리카통일기구(OAU) 창설로 이어지며 제도화됐다. 가나는 아프리카 대륙 정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비전과 달리 경제 운영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국가 주도의 산업화 전략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 특히 볼타강 수력발전 프로젝트는 초기에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과도한 재정 지출과 외채 증가, 그리고 코코아 가격 하락이 겹치면서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결국 1966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은 붕괴했다.

이후 가나는 군부 통치와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그러다 1981년 제리 롤링스(Jerry Rawlings)의 등장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쿠데타로 집권한 롤링스는 초기에는 혁명적 통치를 표방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구조조정을 수용하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한다. 냉전 종식 이후 민주화 압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그는 1992년 헌법을 제정하고 다당제 선거 도입을 통해 민정으로 이행했다. 이는 군사 정권이 스스로 체제를 전환한 사례로, 가나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 이후 가나는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반복적으로 실현해왔다. 2000년 야당인 신애국당(NPP)의 존 쿠포르가 집권하면서 처음으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이 이루어졌다. 이후 국민민주회의(NDC)와 신애국당 간 정권 교체가 반복되며 민주주의가 제도화됐다. 이러한 경쟁은 특정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가나 정치는 아칸, 에웨 등 다양한 민족과 지역 기반이 분산돼 있다. 이를 이유로 어느 정당도 단일 지지층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필연적으로 연합을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경쟁적 연합 정치 구조는 극단적 배제보다는 포괄적 동원을 유도하고 정치적 안정성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가나의 민주주의를 단순한 성공 사례로만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제도적으로는 안정적인 선거와 권력 이양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주의가 대다수 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약화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패 인식 증가와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정치에 대한 신뢰 약화는 민주주의의 질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많은 국민이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가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가나만의 현상이 아니다. 최근 아프리카에서는 쿠데타의 재등장과 정치적 불안정이 확산하는 가운데, 가나는 여전히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적 압박과 청년층의 불만이 결합할 경우, 이러한 안정성 역시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나 대통령의 방한과 오는 6월 예정된 한국-아프리카 장관급 회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한국이 아프리카를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급망과 에너지 전환, 개발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가나는 정치적 안정성과 제도적 기반을 갖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가나의 사례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성공과 사회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동시에 보여준다. 정기적인 선거와 평화로운 정권 교체는 중요한 성과이지만, 그것만으로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대(對)아프리카 전략 역시 단순한 협력 확대를 넘어, 제도의 구축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가나 초콜릿으로 시작된 상징적 장면이 실질적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바로 이러한 접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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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준화 박사
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선임연구원(창립멤버), 서울대 언어학과 강사, 영국 런던대(SOAS) 정치학 박사, 연세대·한국외국어대 연구교수 및 강사 역임. 아프리카 정치와 개발협력 관련 다수의 논문 및 보고서를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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