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이 사업 전반 주도하는 종암동 개운산마을 정비사업
탄소감축 시공·협동조합식 단지 운영…자체 브랜드도 출원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똘똘한 한 채'를 지나 '실거주 한 채', 그걸 넘어 '평생 한 채'를 지향합니다. 오래 살수록 더 안정감 있고 재미있고 윤택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겁니다."
서울의 한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지에서 주민 주도로 친환경적이고 공동체 중심적인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려는 '주거공간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19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에 따르면 조합은 종암동 81-188번지 일대에 130가구 규모 아파트를 건축하는 사업을 2028년 상반기 준공 목표로 진행 중이다.

단독·다가구주택 33가구가 있던 마을을 지하 3층∼지상 최고 20층짜리 아파트로 바꾸는 사업으로, 2022년 7월 건축심의가 완료됐고 2023년 10월 사업시행인가를 거쳐 작년 9월 착공했다.
조합은 2021년 4월 설립인가를 받아 최근 설립 5주년을 맞았다. 건축가 출신인 이원형 조합장이 설립 때부터 조합을 이끌며 공간 설계와 운영 등에 관한 아이디어를 조합원들과 구상하고 체계화했다.
언뜻 일반적인 소규모 도심 정비사업처럼 보이는 개운산마을 정비사업은 아파트라는 물리적 환경을 기반으로 기후변화 대응부터 공동체 운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실험이 추진되는 공간이다.
조합은 통상적인 주택정비사업에서 사업 과정 전반을 대행하는 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체 없이 직접 시공사를 정하고 아파트 공간 구성에 관한 협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사업비 부족에 시달렸다면 시공사의 신용에 의지해 사업자금을 대출받아야 했겠지만,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의 사업자금 대출을 보증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상품이 사업 안정성 확보에 큰 도움이 됐다.
이원형 조합장은 "HUG 보증을 받으면 사실상 도급 공사와 다르지 않아 조합이 시공사에 끌려가지 않고 주도권을 쥔 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며 "우리 조합도 정부 기금을 받아 사업을 꾸려가다 보니 반드시 좋은 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시공에서 '국내 최초' 타이틀이 여럿 붙은 것도 조합이 사업을 주도하는 여건이어서 가능했다. 한국패시브건축협회의 '패시브 하우스' 인증도 국내 아파트 최초로 추진된다.
패시브 하우스는 단열, 기밀, 환기, 방수 등 에너지 절감을 위한 여러 요소기술을 종합해 요건을 충족한 주택에 인증된다. 대표적인 기술이 일부 고급 단독주택 등에 적용된 외단열 공법이다.
국내의 일반적인 공동주택 건축에서는 철근콘크리트 벽체 안쪽에 단열재를 부착하는 내단열 방식을 쓴다. 외부 작업이 필요 없어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공기가 짧지만, 시공 특성상 단열재 연결이 끊기는 지점이 생겨 외부로 열이 빠져나가고 결로가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외단열은 건축물 벽체 바깥쪽 전체를 단열재로 감싸므로 유출되는 열을 대폭 줄여 단열성능이 높고 결로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다만 외부에서 비계를 설치해 작업해야 하므로 시공 난도가 높아 공사비가 상승하고, 고층일수록 시공이 어려워 국내에서는 고급 단독주택 등 중저충 주택에 주로 적용되던 방식이다.
이와 함께 전체 130가구 중 18가구에는 단열 성능과 탄소 감축 능력이 뛰어난 목조 건축도 아파트로는 최초로 적용해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는 주거단지로 조성한다.
주거 다양성 확보를 위해 130가구라는 소규모에도 주택형은 10개로 설계했다.
1인 가구에 적합한 '혼자여도 괜찮아 집'(36㎡A)부터 층간소음을 염려하는 자녀 양육 가구를 위한 '얘들아, 뛰어도 돼 집'(72㎡A), 현관문을 열면 엘리베이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복층형 '누군가 함께라면 집'(69㎡A) 등 면적대별로 다양한 콘셉트를 적용했다.
특히 '누군가 함께라면 집'은 휠체어를 쓰는 장애인이 자신만의 공간을 사용하면서 집 안팎으로 쉽게 이동하도록 복층 아래층을, 그 가족은 위층을 쓰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일부 세대를 장애인 특별공급 물량으로 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단지 운영은 외부 관리회사에 위탁하는 관리사무소가 아니라 주민 모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이 담당한다. 이를 위해 정비조합은 2022년 실제로 '개운산마을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애초 근린생활시설로 계획했던 공간에 마을 카페와 상점, 학원, 어린이집, 공유 주방, 스터디룸 등 각종 주민 공동시설을 두고 협동조합이 이를 운영하며 수익을 내 조합원에게 배분하는 모델이다.
시설 관리는 은퇴했거나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주민이 마을 안에서 '재취업'하는 방식으로 맡도록 하고,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같은 마을 할머니가 돌봐주거나 연로한 주민을 다른 세대원이 돌보고 일정한 혜택을 받게 하는 등의 공동체 운영도 계획하고 있다.
외부와 단절되지 않고 공간 효용성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아파트 구조도 구상 중이다.
조합은 단지 뒷산인 개운산에 고령자나 장애인, 어린 아기 부모 등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전용 엘리베이터와 보행 육교를 설치하고 이를 외부와 공유하는 방안을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고 있다.

이처럼 아파트 각 세대는 개개인이 소유하면서도, 마치 공동 자산처럼 함께 운영하고 책임지는 공간으로 꾸려나간다는 뜻을 담아 자체 브랜드도 '커먼즈'(Commons)도 만들어 상표 출원했다.
커먼즈 1호인 개운산마을 아파트는 '커먼즈 종암'으로 명명된다. 조합은 다른 지역에서도 이같은 방식의 주거 모델과 공동체 운영 방식이 확산하기들 기대하고 있다.
이원형 조합장은 "지금의 경제 구조에서 지속가능한 협동조합형 공동체 운영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라며 "누군가의 희생이나 봉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시스템 구성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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