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유권자 표심에 관심…"교황과 싸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선택"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교황 레오 14세의 충돌이 정교분리가 원칙인 미국 정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카메룬 방문 중 "신성한 것을 암흑과 오물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종교와 신의 이름을 자신의 군사·경제·정치적 이익을 위해 조작하는 이들에게 화가 미치리라"고 말했다.
특히 교황은 "자원을 약탈해 얻은 이익은 무기에 투자돼 죽음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며 "모든 정직한 양심이 이를 규탄하고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메룬의 내전 상황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지만, 이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적대 정책을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레오 14세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지속적으로 전쟁 반대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특히 교황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거론하면서 이란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교황의 행동은 미국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더블린 트리니티대 종교학과 마시모 파지올리 교수는 "교황이 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미국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암묵적인 선을 넘은 것"이라며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미국 정부와 협력을 추구해왔다.
냉전 시대에 가톨릭교회와 미국은 반공 전선에서 협력했고,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미국의 가톨릭 유권자들은 과거에는 민주당 성향이 강했지만, 1980년대 이후 낙태 문제 등을 계기로 공화당 성향으로 이동했다.
현재 미국 가톨릭 신자는 5천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성인의 20%를 차지하는 이들의 표심은 선거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최근 CBS와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가톨릭 신자의 54%가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란 군사 행동에 대해서도 과반이 반대했다.

이 때문에 교황과의 갈등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공공종교연구소(PRRI) 창립자 로버트 존스는 "교황과 싸우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인 레오 14세는 미국 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달 NBC 뉴스가 미국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레오 14세에 대한 호감도는 42%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41%를 넘어섰다.
또한 레오 14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했던 다른 국가 정상들과도 다르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토머스 라이트 선임 연구원은 "트럼프는 보통 보복이 두려워 아첨하는 세계 지도자들에 익숙하겠지만, 교황청에는 관세나 안보 위협 같은 압박 수단을 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레오 14세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충돌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의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는 레오 14세의 트럼프 대통령 비판 발언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개인 공격이 아니라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관의 충돌"이라고 지적했다.
약자를 보호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지향하는 가톨릭교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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