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시아와 '큰 거래' 시도할 수도" 우려
우크라 美지원, 중동으로 전용 검토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국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을 저버리고 러시아와 손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영국과 유럽의 고위 관계자들이 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런 우려는 이날 영국 의회에서 나온 '국가안보전략 합동위원회'(JCNSS) 보고서에도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유럽이 미국 도움 없이 홀로 싸워야만 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으로 실려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영국이 "실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미국과 협력을 계속하되 국방과 안보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하며 "멀어져야 한다"는 게 이 보고서가 제시한 방향이다.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 영토를 공격하더라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이애미 연설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파견을 사실상 거부한 나토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나토가 우리를 도와주지 않은 것은 엄청난 실수였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매년 수천억 달러를 나토에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큰 돈을 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그들을 위해 곁에 있었을테지만 지금은 그들의 행동에 비춰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유럽 당국자는 "미국이 유럽 안보 문제에서 손을 떼는 것은 더 이상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없다. 이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하면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뗄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머리 위에서 러시아와 '큰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 5∼6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라고 우려했다.
영국의 한 군사 소식통은 동부 유럽이 공격받더라도 미국이 보호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들이 제기된 27일에는 그간 우크라이나 지원에 쓰이던 주요 자원을 중동으로 돌리는 방안에 대해 "아직 전용된 것은 없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발언을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내각 회의에서 나토 동맹국들이 자신의 이란 공격을 지원하기를 꺼린다며 동맹국 보호 방침을 철회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더타임스 취재원들은 또 이란과의 전쟁이 이미 미국에 수백억 달러의 비용을 발생시키고 군사 장비 비축량을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어,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전투 능력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키이우로 갈 무기를 전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27일 밝혔다.
루비오 장관은 "미국을 위해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것이 미국의 자산이라면, 미국을 최우선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 2기 출범 후 만들어진 나토 이니셔티브 '펄'(PURL, 우크라이나 우선 소요 목록)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긴장은 이날 루비오 장관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면서 더욱 노골화됐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미국이 '동부 돈바스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 넘겨주라'는 취지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키이우경제대(KSE) 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는 중동 전쟁 개시 이래 요즘 석유와 가스 판매로 하루에 최소 9천700억 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산 원유 수요가 급증했을뿐만 아니라, 트럼프가 연료 가격을 낮추겠다는 이유를 대면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유예해줬기 때문이다.
유럽과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이 내놓는 전망은 암울하다.
유럽 당국자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한 900억 유로(156조 원) 규모의 대출 반대 의사를 꺾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거론하며 "유럽은 우크라이나 정책의 모든 요소에서 막혀 있다"고 말했다.
취재원들은 또 "PURL 체계 하에서 미국의 무기 인도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미국산 무기는 PURL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조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발사대의 70%를 포함해 우크라이나에 필수적인 장비를 공급한다.
해당 당국자는 이미 인도 지연 사례가 심각해졌다며 "미국인들은 인도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으며, 현재는 분명히 중동을 우선시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26일 미국에서는 미국 국방부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계획된 군사 지원을 중동으로 재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에는 PURL을 통해 주문된 방공 요격 미사일이 포함된다.
우크라이나 군 고위 관계자는 "불행하게도 푸틴이 트럼프에게 더 큰 친구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한 유럽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현재까지는 PURL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고 믿는다면서도 "작동하고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미국이 전쟁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물자의 30% 이상이 미국에서만 생산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가 원하더라도 미국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영국은 트라이던트 핵미사일 유지보수, 정보 공유, F-35 전투기 프로젝트, 호주와의 오커스(Aukus) 잠수함 협정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JCNSS 보고서는 트럼프의 최근 발언들이 영미 관계에서 "명백한 긴장 지점"을 보여줬다며 그 탓에 "이런 의존들의 신뢰도가 손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7일 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해 군함을 보내라는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나토에 대한 새로운 '수익자 부담' 결제 구조를 제안했다.
대통령과 가까운 취재원들은 트럼프가 작년 취임 이후 검토해 온 독일 주둔 미군 철수 또한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의 이름을 '트럼프 해협'으로 바꾸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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