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분투칼럼] '시혜' 넘어 '동행'으로…아프리카를 겸허히 보자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우분투칼럼] '시혜' 넘어 '동행'으로…아프리카를 겸허히 보자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우분투칼럼] '시혜' 넘어 '동행'으로…아프리카를 겸허히 보자
    김명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부사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뇌리에는 기아와 빈곤, 혹은 끝없는 내전의 현장이 먼저 자리 잡는다. 하지만 이 대륙은 70여 년 전, 대한민국이 존망의 갈림길에 처했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준 혈맹의 땅이다.
    6·25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국내 정치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지원 요청에 즉각 참전을 결정했다. 총 3천518명의 청년이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 과정에서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다.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또한 공군 전투비행대대를 파견해 826명이 참전했다. 이 중 36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토양에는 이렇듯 아프리카 청년들이 흘린 피와 땀이 깊게 스며있다.
    아프리카를 '남'처럼 느끼는 시선을 거두기 위해 우리의 1960년대를 돌이켜보자. 불과 50여 년 전, 대한민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눈치를 보며 도움을 구하던 처지였다. 196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58달러(약 24만원)였다. 당시 아프리카 경제 강국이었던 남아공(523달러)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가나(181달러)보다도 낮았다. 1970년대 초반에는 해운업 육성을 위해 라이베리아에 크게 의존하기도 했다. 우리가 그들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다는 겸허한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가 한국의 원조 제안에 감격하면서 발 벗고 나설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2024년 기준 전세계에서 아프리카로 유입된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700억달러(약 105조원)를 넘는다. 최근 중국은 3년간 500억달러(약 75조원) 이상의 투자를 약속하면서 아프리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도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글로벌 강대국들의 자본이 각축전을 벌이는 '지원의 홍수' 속에서 한국의 원조액은 이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기 때문에 원조액 자체로 강력한 유인책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현지 지식인과 청년들은 일방적인 원조가 낳는 의존성과 부패, 선진국들의 시혜적인 태도에 깊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다. 폐허 속에서 최첨단 IT 국가로 거듭난 한국만의 '성장 DNA', 그리고 자신들을 진정한 파트너로 존중해 주는 '진정성'이다.





    사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아프리카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으며 '동행'의 역사를 써왔다. 1960∼70년대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었던 가발 산업이 대표적이다. 요즘 흑인 여성들은 소득의 약 30%를 헤어 관리에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에게 가발은 미용의 필수 아이템인데, 전 세계 가발 인프라의 상당 부분을 한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케냐의 '사나그룹'은 동아프리카 가발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또 현지인 1만명 이상을 고용하는 대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는 단순한 시혜적 원조가 아니다. 현지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함께 성장해 온 파트너십의 모범 사례다.
    파트너십의 핵심은 상대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에 있다. 1990년대 초, 경제적 격변기 속에서 탄생한 나이지리아의 영화 산업 '놀리우드'(Nollywood)는 현재 제작 편수 면에서 할리우드를 제치고 세계 2위권에 올랐다. 이는 거대한 문화적 자긍심이 됐다. 그들은 더 이상 서구 콘텐츠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다.




    또 아프리카는 유선 전화망을 건너뛰고 곧바로 스마트폰과 모바일 결제가 일상이 된 '립프로깅'(Leapfrogging) 대륙이다. 케냐의 모바일 금융 이용률은 성인 인구의 90%를 상회한다. 나아가 남아공은 사하라 이남 최대의 K-팝 시장으로 성장했다. 현지 슈퍼마켓에서 라면과 김치, 소주가 판매될 정도로 한국 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우리가 아프리카를 단순히 구형 모델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 최첨단 기술과 문화를 함께 실현할 '혁신의 파트너'로 대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표심을 얻지 못했던 기억을 되짚어본다. 필자 역시 정부유치단의 일원으로 아프리카 현장을 누비며 고민했다. 혹시 그때 우리가 건넸던 제안이 그들이 진정 원했던 '대등한 파트너십'이 아니라, 우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원조의 청사진'에 그쳤던 것은 아닐까. '도와주겠다'는 시혜적 접근이, 스스로 미래를 일구고 싶어 하는 아프리카의 자존감과 충돌했던 것은 아닐지 반성하게 된다.
    지원은 일시적이지만 파트너십은 지속 가능하다. 아프리카는 이제 인구 구조와 경제 통합 측면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기회의 땅이다. 2050년이면 세계 인구 4명 중 1명이 아프리카인이 될 정도로 젊고 역동적인 대륙이다. 또 아프리카자유무역지대(AfCFTA) 출범을 통해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밖에 전 세계 광물 자원의 약 30%가 매장된 '세계의 보물 창고'이다. 백금·리튬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전략 광물 공급망 안정화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다.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K-라이스벨트' 사업은 이러한 파트너십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세네갈, 케냐 등 7개국을 대상으로 한국의 선진 농업 기술을 전수해 식량 자급을 돕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식량 배급을 넘어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성장 DNA'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동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우리에게 '먼 나라'도, '동정의 대상'도 아니다. 50년 전 우리의 열정과 고뇌를 공유하며 우리보다 더 큰 미래를 그려나가는 든든한 동반자다. 그들에게는 "나무는 혼자 서지 못한다"는 케냐의 속담이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공통의 격언처럼, 개인보다 집단의 조화와 상생을 중시하는 '우분투'(Ubuntu) 정신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는 '정'(情)을 중시하는 한국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이제 '지원'이라는 낡은 단어를 내려놓고, 동등한 눈높이에서 '공동 번영'의 새로운 페이지를 함께 써 내려가야 할 때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우리에게 과거의 잣대로 판단할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역동성을 깨워줄 거대한 잠재력이자,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파트너다. 70여년 전 그들이 우리에게 건넸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하며, 이제는 우리가 진심 어린 존중을 바탕으로 그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꿔야 한다.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내일을 열어갈 가장 든든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명희 부사장
    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부사장, 단국대 중동·아프리카학 박사, 헬싱키 경제대 MBA, 저서 '물어물어 찾아낸 나의 친구 아프리카', 아프리카지역본부장·파리관장·케냐관장·알제관장·소피아관장 등 역임.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