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재계 아우른 유력 인사…EU 부집행위원장에 대형은행 회장 역임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 1961년 벌어진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독립 영웅인 파트리스 루뭄바 초대 총리 살해에 가담한 혐의로 최근 재판정에 서게 된 벨기에 백작에게 관심이 쏠린다.
벨기에 법원은 지난 18일 루뭄바를 불법 감금하고 이송하는 데 관여한 역할과 관련해 '전쟁 범죄' 가담 혐의로 기소된 에티엔 다비뇽에 대한 재판 개시를 결정한 바 있다.
사건 발생 65년 만에 재판을 받게된 다비뇽 백작은 올해 93세이다. 벨기에 외교관으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낸 외교 거물이다.
22일 아프리카 전문지 '죈 아프리크' 등에 따르면 다비뇽은 벨기에 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스위스와 독일 베를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벨기에 국왕인 레오폴드 3세가 1940년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와 만날 때도 함께 했다.
할아버지도 외교장관을 지내는 등 집안이 벨기에 외교 명문가다.
다비뇽은 1959년 외교부에 들어가 뒷날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과 상대할 정도로 벨기에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성장했다. 1981∼1985년에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다비뇽은 외교뿐 아니라 실업계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벨기에 최대 투자은행으로 벨기에 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던 소시에테 제네랄 드 벨지크의 회장과 브뤼셀항공 이사회 의장 등을 지냈다.
필립 벨기에 국왕은 2018년 다비뇽에게 백작 작위를 하사했다.
냉전과 탈식민 시대 벨기에는 물론이고 유럽 외교 무대를 주름잡고 재계의 실력자였던 그가 90대 늘그막에, 재판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은 그가 초급 외교관이었던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비뇽은 외교관 연수 중이던 1960년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던 당시 자국 식민지 민주콩고의 독립 문제를 다루는 회의에 참석한다.
다비뇽은 이 회의 참석을 "내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2019년 출연한 다큐멘터리에서 회상했다.
민주콩고 주재 외교관이었던 그는 1960년 9월 벨기에 외교부에 보낸 전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루뭄바를 제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루뭄바는 1960년 민주콩고 독립과 동시에 만 34세의 젊은 나이에 초대 총리에 오른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인이었다.
루뭄바는 같은 해 6월 30일 민주콩고 독립 행사에서 보두앵 당시 벨기에 국왕이 식민 통치의 성과를 거론하자 식민 통치를 "강제로 우리에게 가해진 치욕스러운 노예제"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런 루뭄바는 민주콩고 독립 이후에도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옛 식민지 내 기득권을 지키기를 원했던 벨기에 당국에는 눈엣가시였다.
루뭄바는 취임 2개월 만에 군사 쿠데타로 실각했고 민주콩고에서 분리 독립하기 위해 내란을 일으킨 남동부 카탕가주로 넘겨져 1961년 1월 17일 즉결 처형된다.
직접적으로 그를 처형한 이들은 민주콩고인들이었으나 벨기에가 자국 이익을 위해 루뭄바 살해에 관여했다는 의혹은 이후 지속해 제기됐다.
범인들은 루뭄바의 묘지가 순례지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시신을 절단한 뒤 산(酸)으로 녹이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또 시신 처리에 가담한 벨기에 경찰 간부는 일종의 '사냥 트로피'로 루뭄바의 금니를 챙겼다. 벨기에 당국은 루뭄바 유족이 소송을 제기하자 2016년 경찰 간부의 딸이 갖고 있던 금니를 압류한 뒤 2022년에야 민주콩고에 돌려줬다.
다비뇽은 루뭄바를 카탕가주로 이송하는 데 역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만 다비뇽은 그동안 자신의 연루 혐의를 부인해 왔다.
루뭄바 유족들은 2011년 다비뇽 등 벨기에인 10명이 루뭄바 살해에 관여했다며 벨기에 검찰에 고발했다. 다비뇽 백작은 고발된 10명 가운데 현재 유일한 생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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