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서두에 5분간 조명으로 몰입 높여…오보에·하프 연주자 이동하며 화합 시각화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경윤 특파원 = 공연장이 어둠에 잠기고 멀리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한 쌍의 조명이 관객석을 빠르게 지나쳐 무대까지 이르렀다가 진자운동을 하듯 되돌아가고, 그사이 가느다랗던 바람에 빗소리까지 겹치면서 폭풍우처럼 몰아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10일(현지시간) 밤 열린 LA 필하모닉 '엇갈린 랑데부' 공연은 서두에 설치미술가 양혜규 작가가 선보이는 '조명 서곡'을 배치했다.
LA 현대미술관(MOCA)에서 설치 미술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를 감상하고 콘서트홀로 이동한 사람들을 미술에서 음악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약 5분가량 조명과 자연의 소리로만 구성한 이 서곡에서는 한 쌍의 빛이 주인공이다.
무대에만 조명을 비추는 것이 아니고 관객석 곳곳을 쓸어내리고, 유리창에 비친 빗물 자국처럼 퍼뜨리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객의 몰입감을 높였다.
양혜규 작가는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 다른 장르를 어떻게 하나의 테마로 만들까 고민했다"며 "미술을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 음악가의 무대는 매너가 또 다르다. 음악을 맞이하는 마음을 준비하자는 의미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LA필하모닉과 지휘자 이얼은 윤이상 작곡가의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이중협주곡'을 선보였다.
오보에와 하프 연주자가 공연 시작 전에는 무대의 양 끝에 서서 독주를 주고받다가 중반 이후에 무대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 함께 연주하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더했다.
윤 작곡가가 이중협주곡의 모티브로 떠올린 '견우와 직녀' 설화처럼 양극단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만나는 모습을 음악뿐만 아니라 움직임으로도 표현한 것이다. 이를 위해 특별히 무대 위에는 하프를 두 대 준비했다.
이얼 지휘자는 "곡 안에서 오보에와 하프가 만난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다"며 "그래서 오보에와 하프가 떨어져 있다가 (이때) 내려와서 같이 연주하면 어떨지 아이디어를 냈다. LA필이 유연하고 열려 있어서 가능한 무대였다"고 설명했다.
서양 악기인 오보에와 하프를 동양적으로 풀어낸 윤이상의 독특한 선율도 귀를 사로잡았다.
호흡에 따라 떨리며 예민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오보에와 현을 뜯듯이 연주하는 하프가 서로 번갈아 등장하다가 함께 겨루듯이 소리를 내기도 하고, 막바지에는 합쳐진다.
작게는 무대 위의 오보에와 하프, 크게 보면 음악과 미술, 또 시대적으로는 70년대 독일에서 활동한 윤이상 작곡가와 2020년대 LA에서 이를 풀어낸 양혜규·이얼이 교차하듯 만나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엇갈린 랑데부'라는 프로젝트명이 울림을 갖는다.
'엇갈린 랑데부'는 LA 현대미술관과 LA필하모닉이 2003년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개관 이래 처음 시도한 협업 프로젝트다. 모두 무료로 진행됐으며 객석이 다 찼다.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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