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전쟁 발발 5일만에 제품 공급 불가 통보…연쇄 영향 우려
공급과잉·수요 침체에 원가 부담까지 겹쳐…가동률 하락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 국내 최대 에틸린 생산시설인 여천NCC가 고객사들에 공급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면서 석화업계 전반으로의 연쇄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침체로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국내 석화업계의 불황이 미국·이란 전쟁으로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평균 1∼2개월 분량의 나프타 원료를 비축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이르면 이달부터 주요 NCC(나프타 분해시설)들의 불가항력 선언이 연쇄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불가항력은 전쟁 등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제품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책임을 면제받기 위한 조치다. 석유화학업체들은 고객사에 필요한 물량을 제때 공급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즉시 이를 통보해야 한다.
가장 먼저 제품 공급 불가를 선언한 건 국내 최대 에틸린 생산시설인 여천NCC다.
연간 229만t을 생산하는 여천NCC는 지난 4일 고객사에 제품 공급 이행 지연 및 조정을 통보하고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여천NCC는 고객들에 보낸 서한에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갑작스럽고 급격하게 고조됨에 따라 원자재 조달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3월 인도 예정이었던 원료 나프타의 도착이 크게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중동 전쟁이 발발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여천NCC가 제품 공급 불가 선언을 한 건 비축해놓은 나프타 원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글로벌 수요 부진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작년부터 생산량 감축에 돌입해왔다. 여천NCC는 작년 말 연간 47만t 규모의 3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현재 1·2공장만 운영하고 있다. 가동률이 낮은 탓에 나프타 원료 재고량도 적어 중동사태로 인한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여천NCC를 시작으로 '공급 불가항력' 선언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 공급되는 나프타는 절반이 수입되고 나머지 절반은 국내에서 원유를 정제해 직접 생산한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약 70%로 이 중 상당수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수입되는 나프타 비중 54%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여천NCC뿐 아니라 모든 NCC 시설의 원료 수급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그동안 생산량 감축을 이어왔기 때문에 각 NCC의 재고량이 넉넉하지는 않아 이르면 이달부터 주요 NCC들의 불가항력 선언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프타 원료 가격 급등으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나프타 가격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지난달 27일 t당 590달러에서 이달 3일 t당 737달러로 약 25%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원가가 오르면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해야 하지만, 공급 과잉과 수요 침체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제품 스프레드 축소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원료 수급 차질이 장기화하면 현재 70∼80% 정도인 NCC 평균 가동률이 더욱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석유화학 업황은 구조적 공급과잉 국면에 있어 원료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즉각적으로 전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향후 국제유가 변동과 원료 조달 환경 변화, 기업들의 가동률 조정 및 대체 조달 전략 등을 주요 변수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jak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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