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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⑽ 르완다의 개발과 카가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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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⑽ 르완다의 개발과 카가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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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⑽ 르완다의 개발과 카가메 대통령
    김영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르완다는 우리에게 르완다 대학살로 잘 알려져 있다.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에서 벌어진 이 비극에 100여일 동안 르완다 총인구의 약 20%인 약 80만명에서 100만명이 학살됐다. 이 사건이 비극 중의 비극인 것은 대부분의 학살이 군대가 아닌 민간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 때문이다. 필자가 르완다를 처음 간 2015년, 르완다 대학살의 후유증은 여전히 깊게 남아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르완다 수도 키갈리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었다.





    키갈리는 대학살을 겪은 이후 폴 카가메 대통령의 통치하에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현지 연구를 통해 르완다의 경제 성장 이유를 알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결국 모든 답변의 끝에는 카가메 대통령이 있었다. 카가메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모두가 카가메 대통령이 르완다 경제 성장의 제일 중요한 이유라고 답변하는 것이 놀라웠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카가메 대통령을 칭찬하며 그가 세운 시스템이 르완다 사회 전체를 위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장기 집권을 하는 카가메를 국제사회에서는 독재자로 평가하기도 했는데, 필자는 그를 독재자보다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통치자로 평가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독재자라고 부르기에는 비교적 통치 기간이 짧아서였다. 아프리카에서 독재자로 악명을 떨치려면 통치 기간이 최소 30년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카가메 대통령이 르완다를 통치한 기간이 공식적으로 약 15년 정도였으며, 1994년 르완다 제노사이드의 참극을 수습하던 시점부터 실질적 통치권을 행사해 온 점을 고려하면 비공식적으로 20년 정도였다.
    두 번째 이유는 르완다에서 카가메 대통령의 인기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정당한 선거를 치르더라도 카가메 대통령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판단한 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카가메 대통령은 아프리카 독재자가 지녀야 할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게 됐다. 2024년 대선에서 카가메 대통령은 99.1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이번 승리로 차기 대선의 승리까지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 현재 68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를 고려한다면 그의 임기는 2034년까지 이어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결국 1994년부터 2034년까지 최소 40년에 달하는 초장기 집권 체제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는 수많은 독재자의 명멸로 점철돼 왔다. 검은 히틀러로 악명을 떨친 우간다의 이디 아민, 독립 영웅에서 참혹한 독재자로 전락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가 대표적이다. 또 92세의 나이에 8선에 성공하며 사실상 종신 집권을 꾀하는 카메룬의 폴 비야, 그리고 1979년부터 적도 기니를 통치하며 현존 최장수 집권 기록을 갱신 중인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지도자가 억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이 자기 아들 혹은 부인에게 권력을 넘겨주려 노력했지만, 단 한 정권도 북한처럼 3대에 걸친 독재 체제를 구축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유지와 통치 방식에서 르완다의 카가메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독재자들과 그 결을 같이 한다. 99%를 상회하는 비현실적인 득표율은 르완다의 선거가 더 이상 민주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가 얻은 득표율은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보다는 반대파를 철저히 배제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얻어낸 강요된 합의에 가까운 수치다.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을 개정했으며, 안보와 통합을 명분으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했다. 고도의 중앙집권적 통치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1인 지배 체제는 카가메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 30년의 통치 기간을 넘긴 그는 이제 더 이상 독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카가메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이다. 르완다 국내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국민과 정상도 카가메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카가메 대통령을 다른 아프리카 독재자와 같은 선상에 놓지 않는 것은 그의 통치 기간 보여준 경제 개발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독재자가 국가 자산을 사유화하고 엘리트층을 극도로 부유하게 만들어서 국가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것과 달리 카가메 정권은 르완다 대학살 이후 폐허가 된 르완다를 아프리카에서 효율적이고 나름 청렴한 국가로 변모시켰다. 연평균 7∼8%에 달하는 경이로운 경제 성장, 공적 부패의 획기적 척결, ICT 기반의 국가 개조 사업, 항공 산업 발전 등은 르완다를 아프리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르완다의 미래는 카가메 대통령의 비범함을 넘어 그가 구축한 시스템이 지도자 부재의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독재자가 권력의 황혼기에 직면했던 비극은, 강력한 1인 지배 체제가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붕괴했다는 사실이다. 카가메가 이룩한 청렴한 관료제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이 르완다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유산으로 남으려면, 이제는 효율적인 통치를 넘어 정당한 승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가 진정으로 르완다를 사랑하는 통치자라면 최소한 40년 통치 기간이 끝나는 2034년에는 권력을 다시 움켜쥐는 대신 평화로운 정권 교체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억압이 아닌 성숙한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르완다 국민이 스스로 다음 세대의 리더를 선출하는 경험을 쌓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노사이드의 비극을 딛고 일어선 르완다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아프리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사라진 흔한 독재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옴으로써 르완다 민주주의의 기틀을 완성한 지도자로 기억될 것인가. 그의 평화로운 퇴진과 민주적 정권 이양만이 르완다의 경이로운 성장을 계속되게 할 것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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