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구팀 "수백만년 전 인간-유인원 공동 조상이 상상력의 기원일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인간과 진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영장류 중 하나인 보노보가 존재하지 않는 물체를 상상하고 표현하는 '가상 놀이'(pretend play)를 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미국 존스혼킨스대 크리스토퍼 크루페니 교수팀은 6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서 어휘 훈련을 받은 보노보 '칸지'(Kanzi)에 대한 일련의 가상 놀이 실험 결과 칸지가 존재하지 않는 물체를 상상하고 그 물체에 대한 이차적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결과는 적어도 문화화된 유인원에게는 가상의 사물을 이해하는 능력이 인지적 잠재력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는 상상력의 기원이 600만~900만년 전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만의 고유 능력으로 여겨져 왔다. 아이들은 두살 무렵이면 소꿉장난 간은 가상 놀이를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야생과 사육 환경에서 모두 동물들이 가장 행동(pretending behavior)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일화적 보고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이 가장 행동을 하는지를 알아보는 통제된 연구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 평생 사육되면서 언어 훈련 등을 받았고 다양한 인지·행동 실험에 참여해온 보노보 칸지를 대상으로 아이들의 소꿉놀이와 유사한 3가지 실험을 설계해 진행했다.
칸지는 1980년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학 여키스(Yerkes) 필드 스테이션에서 태어난 보노보로, 언어, 인지기능, 도구 제작, 사회적 행동 연구 등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많이 내놔 동물인지과학에서 전설로 불린다. 칸지는 지난해 3월 아이오와주 디모인 비영리 영장류 보호시설 에이프 이니셔티브(AI)에서 44세로 사망했다.

각 실험에서 실험자와 칸지는 빈 주전자와 컵, 또는 그릇과 병이 놓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첫 번째 실험에서 실험자는 빈 투명 주전자를 들어 테이블 위의 빈 투명 컵 두 개에 주스를 따르고 그중 컵 하나의 주스를 다시 주전자에 버리는 시늉을 한 다음 칸지에게 "주스는 어디 있지"라고 물었다.
칸지는 대부분의 경우 상상의 주스가 남아 있는 컵을 정확히 가리켰고, 실험자가 상상의 주스가 든 컵의 위치를 바꿔도 그 컵을 제대로 찾아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칸지가 컵 안에 진짜 주스가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실제 주스가 든 컵과 상상의 주스가 든 컵을 제시하며 어떤 컵을 원하는지 물었다. 칸지는 매번 실제 주스가 든 컵을 선택했다.
세 번째 실험에서는 상상의 주스 대신 포도를 사용해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빈 용기에서 포도 하나를 맛보는 척한 뒤, 그것을 병 하나에 넣는 시늉을 했다. 이어 한쪽 병을 비우는 척한 다음 칸지에게 "포도는 어디 있지?"라고 물었고, 칸지는 다시 상상의 포도가 든 병을 가리켰다.
논문 제1 저자 겸 교신저자인 아밀리아 바스토스 박사는 "칸지는 가상의 물체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며 "이 실험은 유인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을 통해 개념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크루페니 교스는 "유인원의 정신적 삶이 '지금 여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판도를 바꾸는 발견"이라며 "오랫동안 인간다움의 핵심 요소로 여겨져 온 상상력이 인간만의 고유 능력이 아니라는 생각은 기존 관점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 출처 : Science, Amalia P. M. Bastos et al., 'Evidence for representation of pretend objects by Kanzi, a language trained bonobo', 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z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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