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탄압 피해 망명 온 베레켓 씨…"추워도 안전한 한국 너무 좋다"
눈·얼음과 이주노동자 현실 담은 사진전 열어…난민 권익 활동도

(서울=연합뉴스) 임경빈 인턴기자 = "한국으로 망명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안전한 한국에서 지내며 사진에 힘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에티오피아 출신 사진작가인 베레켓 알레마예후(46) 씨는 지난달 20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사진을 워낙 좋아해 한국에서 가장 먼저 산 물건도 카메라"라고 말했다.
자신을 '포토 패터니스트'(패턴 전문가)라고 소개할 정도로 사물의 패턴을 포착해 촬영하는 데 관심이 많다.
베레켓 씨는 "일상에서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면 정말 많은 패턴이 숨겨져 있다"며 "사물을 바라볼 때마다 그 속의 패턴을 탐구하고자 노력한다"고 밝혔다.
자연, 그중에서도 물과 얼음의 패턴에 깊이 매료됐다.
경기도 고양시의 인적 드문 산간 지역에서 지내던 2016년 겨울 무렵 태어나 처음 본 눈은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그는 "에티오피아에는 눈이 없기에 매우 흥미로웠다"며 "이후 3년간 눈과 얼음을 소재로 한 실험적인 사진들을 많이 찍었다"고 돌아봤다.
한국에서 이색적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2017년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눈과 얼음을 소재로 한 첫 개인 사진전 'Exile Pattern'(망명 패턴)을 개최했다.
이후 경기도 파주, 강원도 정선 등 전국 각지에서 10여차례 사진전도 열었다.

베레켓 씨는 "한국 작가들과도 전시회를 여러 번 함께했다"며 "먼저 협업을 제안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나고 자란 베레켓 씨는 젊은 시절부터 비정부기구(NGO)와 사회적 기업에서 근무했다.
그는 "청년들이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예술 활동을 접하도록 돕는 일이었다"며 "유니세프와 아프리카연합(AU) 등 국제기구와 협업하며 에티오피아의 사회적 변화를 꿈꿨다"고 밝혔다.
동시에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감시 선상에 올랐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베레켓 씨는 "에티오피아는 계속된 독재 정부의 집권으로 인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며 "사회를 비판하면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되어 고초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1974년 쿠데타로 집권한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은 1977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붉은 테러' 기간에 정적 등 수십만 명을 학살하는 공포정치를 펼쳤다.
멩기스투의 독재는 1991년 끝났지만, 그를 몰아낸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의 멜레스 제나위 총리 또한 2012년까지 21년간 장기 집권했다.
계속된 정부의 압박에 시달리던 베레켓 씨는 2014년 한국에서 열린 평화 포럼에 초청받자 그길로 망명했다.
그는 "당시는 선택의 여지 없이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6·25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군이 유엔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역사도 있는 만큼 한국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난민 신분으로 식당부터 공장까지 다양한 곳에서 일했다.
베레켓 씨는 "일은 힘들었으나 고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누릴 수 있어 좋았다"며 "그래도 한국의 추위는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웃었다.

이주 노동자와 난민 앞에 놓인 현실은 한국의 겨울처럼 차디찼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화상을 입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열린 '공존: 전통과 현대의 담론' 전시전에서 장갑을 소재로 한 사진들을 전시했다.
베레켓 씨는 "이주 노동자가 공장에 취직하면 환영의 의미로 장갑을 받는다"며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으로 한국인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갑을 소재로 이주 노동자가 한국에서 마주하는 현실을 알리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내 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자는 취지에서 '한옥커스'라는 단체를 공동 설립했다.
그는 "다양한 국가 출신 난민들이 서울 종로구 효자동 인근의 한옥 건물에서 모여 서로의 삶을 이야기한다"며 "한국 내 난민들의 인식을 증진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서히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레켓 씨는 "비단 난민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한국인도 저마다 문제를 짊어지고 산다"며 "쉬운 해결책은 없는 만큼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삶의 활력소는 축구다.
재한 에티오피아인으로 구성된 축구팀 '에토-서울'(ETHO-SEOUL)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베레켓 씨는 "에티오피아에서 축구는 하나의 문화이자 삶의 일부"라며 "낯선 한국 땅에서 고단함을 잊게 해주고 에티오피아인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존재"라고 전했다.
한국인이나 다른 외국인 동호회와 친선전도 자주 갖는다.
그는 "인천에서 16개국 팀이 모여 토너먼트를 개최하기도 했다"며 "다만 경기장 대관이 매우 어렵다. 사용료를 지불해도 연습할 곳을 찾기 힘든 실정"이라고 아쉬워했다.
베레켓 씨의 삶의 목표는 소박하지만, 하루를 가치 있게 살아내는 것이다.
그는 "평소 계획적인 성향은 아닌지라 내가 좋아하는 사진과 커피, 자전거 타기를 즐길 수 있으면 된다"며 "내가 사랑하는 한국 사회에 꾸준히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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