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라며 연기하다가 경찰 출동…"주민 상처 키워"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독일 공영방송 제작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풍자하겠다며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수도에 미국 국기를 거는 장면을 찍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일간 벨트 등에 따르면 NDR(북부독일방송) 정치풍자 프로그램 '엑스트라 드라이'(Extra 3) 제작진이 촬영을 위해 지난 28일 그린란드 누크를 찾아갔다.
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코미디언 막시 샤프로트(41)는 누크 시내 카투아크 문화원 건물 앞 깃대에 성조기를 걸다가 문화원 직원들에게 제지당했다.
현지 주민 오를라 요엘센은 샤프로트가 자신을 미국 정부 대표로 속이고 성조기를 게양하려 했다고 전했다. 샤프로트는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 끝에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튿날 문화원을 찾아가 "그린란드인들에게 국기가 가지는 의미를 가볍게 생각했다. 반응을 보고 곧바로 깨달았다"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독일에서는 국기에 특별한 자부심을 갖지 않는다. 뒷마당에도 걸지 않는다"고 했다.

NDR 방송사도 "촬영 중 어느 때라도 풍자 대상이 그린란드인이라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며 유감을 표시했으나 비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누크가 속한 세르메르소크주의 아바라크 올센 지사는 "몇 주 동안 우리나라를 군사적으로 위협한 군사 초강대국 국기를 수도 문화원 앞에 거는 건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라며 이 사건이 주민들 상처를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샤프로트는 덴마크 공영방송 DR에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미국인을 연기하는 게 목적이었다. 지금 미국의 외교정책이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라며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거듭 사과했다.
'엑스트라 드라이'는 1976년 시작한 유서 깊은 정치풍자 프로그램이다. 함부르크·니더작센 등 독일 북부 4개주 방송인 NDR이 제작해 공영방송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에 방송된다.
이 프로그램은 2016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언론·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내보냈다가 두 나라 사이 외교 갈등을 일으켰다. 이번 그린란드 촬영분이 예정대로 방송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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