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방의회, 전쟁권한 사실상 고스란히 내줘 견제 불능"
건국 초부터 견제 약화…트럼프 공화당 장악에 더욱 심화
독단 견제할 법률 있지만 거부권 꺾을 3분의2 찬성 힘들어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국 헌법상 전쟁 포고는 연방의회의 고유권한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취임 후 의회의 견제에 실질적으로 전혀 구애받지 않고 뜻대로 군사 개입을 포함한 대외 행동을 펴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트럼프로부터 의회가 전쟁 권한을 되찾지 못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런 상황을 빚은 요인들을 분석했다.
WSJ는 대외 충돌의 성격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는데다가 집권당인 공화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장악력이 강하기 때문에 백악관이 대외 정책을 거의 견제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들어서만 따져도 트럼프 대통령은 파격적 대외행동을 여러 차례 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고, 베네수엘라의 이웃 나라들에게 군사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고, 이란을 상대로 공격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으며, 그린란드 문제를 놓고 유럽을 상대로 외교 위기를 불붙였다가 물러섰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행동을 WSJ는 "어질어질한 최근 3주간의 세계 무대"라고 표현했다.
의회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급급했으며 사실상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의원들 사이에서는 대외정책 문제에 관한 의회의 헌법상 권한을 대통령으로부터 되찾아와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논의가 촉발됐다.
공화당이 다수인 연방하원은 베네수엘라에 파병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자는 결의안을 215대 215, 가부 동수로 이날 부결시켰다.
의원정수가 435명인 연방하원에서 공화당은 218석, 민주당은 213석을 각각 차지하고 있으며 4석은 현재 공석이다.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이 구성한 의회 대표단은 지난 주에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덴마크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덴마크를 방문했으며,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일고 있음을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 대외정책을 견제하려고 시도하는 의원들은 제2차세계대전 이래 유지돼 온 미국 주도의 글로벌 질서가 걸려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틀에 걸친 코펜하겐 출장 기간에 리사 머코스키(공화·알래스카) 연방상원의원은 "의회가 너무나 많은 분야들에서 권한을 넘겨줬다"고 WSJ에 말했다.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재작년 가을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의 재선을 지지하지 않았던 머코스키 의원은 "우리 역할을 나서서 말해야 하는 이들은 바로 우리"라며 "행정부의 과잉행동이라고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의원들도 인정하고 있다.
최근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백악관이 견제받지 않고 대외정책을 펴기가 더욱 쉬워진데다가 테러 집단과 외국 조직들로 인해 전쟁과 평화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졌다.
요즘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반기를 들려면 경선 탈락을 각오해야 한다.
최근 연방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파병 권한을 제한하려는 결의안이 제출됐을 때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이에 찬성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절대로 다시 공직에 당선돼서는 안 된다"며 낙선 운동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연방대법원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대외정책에서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의회 대표단의 코펜하겐 출장에 참여한 새라 제이콥스(민주·캘리포니아) 연방하원의원은 현재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이번 대통령 때문만은 아니다. 수십년에 걸쳐 의회가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해온 탓이다. 이 점은 의회 내 양당 모두 마찬가지이며, 양당 대통령들에 모두 해당하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대외정책 권한 행사 주체에 관한 논란은 사실 미국 정부가 수립되던 때부터 있어왔다.
헌법에도 입법부와 행정부에 권한이 나뉘어 있어 상호 견제가 이뤄지도록 설계돼 있다.
헌법에 열거된 연방의회의 외교·통상 관련 권한 중에는 관세의 부과·징수, 외국과의 통상 규제, 전쟁 포고 등이 있다.
군을 창설하고 군의 관리·규제에 관한 규칙을 정하는 것도 의회의 권한이다.
대통령은 헌법에 미군 통수권자, 즉 전 미군의 총사령관으로 정해져 있으며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상원의 권고와 동의를 얻어서 조약을 체결할 권한이 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제임스 매디슨은 1787년 헌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 의회의 권한 중 "전쟁을 하는"(make war) 권한을 "전쟁을 포고하는"(declare war) 권한으로 문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는 외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대통령이 의회 승인을 기다릴 필요가 없이 즉각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으며, 이 제안은 제정된 헌법에 반영됐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의회가 대외정책과 전쟁에 관한 권한을 행사해 대통령의 의사를 꺾은 적은 과거에는 종종 있었다.
1805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플로리다를 둘러싼 영토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스페인을 상대로 군사행동을 하겠다며 의회 승인을 요청했으나 의원들은 거부했다.
1831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프랑스가 나폴레옹 전쟁 때의 미국 피해를 배상하지 않고 있다며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했으나 의회가 거부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의회는 베르사유 조약 비준을 거부하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주창해 만들어진 '국제연맹' 가입도 거부했다.
그러나 현대로 올수록 전쟁과 대외정책에 대한 의회의 권한은 약화되고 대통령과 행정부가 독주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을 때 의회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누르고 '1973년 전쟁권한법'을 통과시켜 의회 승인 없이 외국에 미군을 파병하는 행정부의 권한을 제한했다.
이 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미군을 배치한지 48시간 내에 의회에 통보해야 하며, 만약 의회가 전쟁 포고나 무력 사용 승인을 하지 않을 경우 60일 내에 철군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가 전쟁권한법을 활용해 대통령의 행동을 억제하는 데 성공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전쟁권한법에 따른 철군 결의안이 상원과 하원 양쪽에서 통과된 적은 몇 차례 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누르기 위한 가중다수인 3분의 2의 찬성을 확보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권한법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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