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025년 마지막 날, 취재원 한 명이 불쑥 영어로 된 메시지를 보내왔다.
"행복한 새해 되길 바랍니다, 선생님.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주변에 안전과 건강이 머무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두 달 전 전화로 짧게 대화할 때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던 팔레스타인 의대생이었다.
비가 줄줄 새는 가자지구 데이르알발라 난민촌 천막에 머무는 그로부터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인사를 받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중동에서 분쟁지 현장을 취재하고 오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하마스 누크바 대원들이 불태운 키부츠의 집들을 보여주던 유대인 노파, 헤즈볼라 대원인 아빠와 쌍둥이 삼촌을 전장에서 잃은 레바논의 소녀, 각자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는 늘 상상을 넘어선다.
내전이 벌어진 고국을 피해 불법체류자가 됐지만 가족에게 부칠 생활비를 마련하려 밤낮없이 일하던 시리아 난민을 만난 적도 있다. 어린 딸이 보고 싶다며 휴대전화기에 띄운 사진을 어루만지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필자가 중동에서 만나본 한국 외교관들은 늘 진지한 모습이었다. 불확실한 정세 속에서 교민 안전에 부심하면서도, 주재국과 우리나라가 상생할 방향을 진심으로 고민하는 모습이다.
작년 11월 이재명 대통령이 이집트 방문 때 발표한 대(對)중동 협력 비전 '샤인(SHINE) 이니셔티브'도 중동 험지에서 잔뼈가 굵은 외교공무원의 제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가자지구 전쟁으로 촉발된 중동 위기가 한고비를 넘긴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게 나온 로드맵으로 보여 반가웠다. 현장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중동은 2026년에도 여러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화 구상'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가자지구 휴전은 살얼음판이다. 작년 '12일 전쟁'으로 직접 공습을 주고받은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긴장이 여전하고, 독재자를 축출한 시리아 임시정부는 종파 갈등으로 불안하다.
최근에는 오랜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아라비아반도 패권을 놓고 부딪히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며 새로운 변수까지 돌출했다.
전세계 취재진이 새롭게 어떤 현장에 파견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고통과 상실을 전하는 보도보다는 평화롭고 건설적인, 어두웠던 그늘에 빛이 비치는 뉴스가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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