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6% 과징금 가능한 EU 규제에 대한 대응 차원인 듯
입국 금지된 전 EU 임원 "매카시즘 다시 부나" 비판

(서울·브뤼셀=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현윤경 특파원 = 미국이 자국 빅테크 규제 입법을 주도한 유럽연합(EU)의 전 고위직 등 5명의 입국을 금지했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날 티에리 브르통 전 EU 내수담당 집행위원과 비영리단체 관계자 등 총 5명을 비자 발급 제한 대상 명단에 올렸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이들은 미국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검열하고, 수익 창출을 제한하는 등 조직적 압박을 가했다"고 설명했다.
브르통 전 집행위원은 지난 2022년 EU가 제정한 디지털서비스법(DSA) 제정을 주도한 인물이다.
엑스(X·옛 트위터)와 메타, 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를 겨냥한 이 법은 플랫폼 기업이 온라인상의 불법 콘텐츠와 혐오 발언, 허위 정보 등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전 세계 매출의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로 EU는 이달 초 엑스의 계정 인증 표시와 광고 정책을 문제 삼아 1억2천만유로(약 2천9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당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EU에 대해 "미국 기업들을 쓸데없는 문제로 공격하지 말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야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EU의 빅테크 규제가 비관세 무역장벽이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브르통 전 위원은 지난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엑스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당시 트럼프 후보의 온라인 생중계 대담을 추진하자 'DSA를 위반하지 말라'는 경고서한을 보내 외교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캠프가 '브르통 전 위원의 서한은 대선 개입'이라고 반발하자 EU는 하루 만에 특정 이벤트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고 진화했다.
미국은 브르통 전 위원 외에도 독일의 온라인 혐오 피해자 지원단체 '헤이트에이드'를 이끄는 안나레나 폰 호덴베르크와 조세핀 발롱, 영국의 가짜뉴스 감시기관 GDI 설립자 클레어 멜퍼드, 디지털혐오대책센터(CCDH)의 CEO 임란 아메드의 입국도 금지했다.
사라 로저스 미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은 이날 발표한 입국 대상 제한자들에 대해 "미국인의 발언을 검열하도록 선동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사 사례가 계속될 경우 제재 대상 명단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EU는 이번 조치에 반발하면서 브르통 전 집행위원을 지지했다.
EU의 산업 분야를 총괄하는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엉·산업 담당 집행위원은 엑스에 "전임자인 티에리 브르통은 2019년 유권자에게 부여받은 권한에 충실하게 유럽의 공동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며 "어떠한 제재도 유럽 시민의 주권을 침묵시킬 수는 없다. 브르통과 이번 조치의 영향을 받은 유럽인에게 전적인 연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브르통 전 집행위원의 출신국인 프랑스의 장 노엘 바로 외무장관도 "DSA는 오프라인에서 불법인 행위가 온라인에서도 불법이 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유럽에서 민주적으로 채택됐다"며 "이 법은 절대적인 역외 적용 범위를 갖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미국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럽 국민은 자유롭고 주권을 가진 존재로서 자신의 디지털 공간을 규율하는 규칙이 타국에 의해 강요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브르통 전 집행위원 본인도 엑스에 "매카시즘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는가"라며 "DSA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유럽 의회의 90%와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법"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에게 "검열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곳에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유럽의 DSA가 아닌, 미국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자체 검열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kom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