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타인 자료 공개' 법안, 상·하원 사실상 만장일치 통과
공화, 지방선거 참패 속 트럼프에 잇따라 반기…"'포스트 트럼프' 고민 방증"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미국 연방의회가 법무부에 성범죄자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 자료 공개를 강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력 약화가 드러났다.
18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이 본회의에서 찬성 427표, 반대 1표로 해당 법안을 가결한 데 이어 상원도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엡스타인 사건과 트럼프 대통령의 연계 의혹을 제기해 온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찬성 몰표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 이후 공화당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따라서 1년 전만 해도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하는 사안을 압도적으로 찬성 표결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해석했다.
그러나 이날 상·하원에서 엡스타인 자료 공개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내 영향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줬다.
그런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레임덕이 도래하는 미국 대통령 두 번째 임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을 계속 장악할지 의문이라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지적했다.
지난 수개월간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 이슈를 '사기극'이라고 비난하며 문건 공개 법안을 둘러싸고 공화당 의원들과 충돌해왔다.

그는 법안을 지지하는 의원 중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의원도 공격했다. 특히 오랜 측근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을 "공화당을 배신한 반역자"라고 비난했다.
법안 표결이 임박해서는 법안 강제 부의 청원에 서명한 공화당 의원들에게 이름을 빼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전략은 실패했다. 공화당 의원들조차 엡스타인 자료 공개 법안 반대를 정치적인 지뢰로 판단했다는 점이 이날 표결로 드러났다.
일부 공화당 의원은 이번 사태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그를 2기 집권으로 이끈 핵심 지지층 사이에 갈등이 심화하는 뚜렷한 신호라고 지적했다.
이번 엡스타인 법안을 공동 발의한 공화당 토머스 매시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그의 지지 기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는 '엡스타인 파일을 아직도 원하면 여러분은 더 이상 내 지지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순간 지지층과의 연결고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 자료 공개 법안 표결 전날 밤 뒤늦게 공화당 의원들에게 찬성표를 던지라고 촉구했다. 공화당 내 이탈표가 가시화하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같은 뒤늦은 법안 지지 선언을 두고 매시 의원은 "체면치레용"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가 없어도 법안은 큰 표 차로 통과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달 초 공화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엡스타인 자료 공개 법안에 반대하면 내년 중간선거 전망이 더욱 어두워질 것으로 공화당 의원들은 우려해왔다.
이런 분위기에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공화당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거나 그에게 입장을 바꾸도록 압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상원 공화당은 연방정부 기능이 일시 정지되는 '셧다운'을 끝내기 위해 필리버스터 의결정족수를 60명에서 단순 과반(51명)으로 낮추는 '핵 옵션'을 가동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상원은 정권 교체 때마다 정책이 요동치지 않도록 오랫동안 이 규칙을 유지해왔고,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또 인디애나주 상원 공화당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재획정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 개월간 선거구 조정안을 밀어붙였으나 인디애나 공화당 지도부는 법안 통과에 표가 부족하다며 거부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직면한 공화당 내부로부터의 반발과 역풍은 공화당이 '포스트 트럼프'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라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분석했다.
폴리티코는 이러한 흐름이 민주당의 지방선거 승리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며 "접전이 예상됐던 선거가 무너졌다는 점은 트럼프도 정치적인 중력을 영원히 거스를 수는 없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ri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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